엄마 마음
가게로 향하며 혼자 집에서 아이만 돌보는 생활을 청산하리라 흔들리지 않는 다짐을 했던 나는 출근하는 남편과 함께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직은 쌀쌀한 3월 중순, 영아를 대동한 움직임엔 챙겨야 할 짐이 한 보따리였다.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하겠다고 나섰던 것은 아니었다. 생후 70일쯤 지난 아이를 데리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랴. 그저 남편과 함께할 수 있도록 육아 공간을 가게 2층 다락방으로 옮겨보자는 순수한 의도였다. 처음 며칠은 2층에서 아이만 돌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1층에 내려와 있는 시간들을 늘려갔다. 손님이 없을 땐 유모차에 태워 매장 테이블 사이를 빙글빙글 돌다가 손님이 오시면 주방 한 구석으로 가서 한쪽 발로는 살랑살랑 유모차를 밀고 손으로는 소일거리를 찾아서 했다. 아기가 잠을 많이 자는 시기라서 운이 좋으면 1시간씩 짬이 나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몰래 나와 학교 앞 분식집을 기웃거리듯 들뜬 마음으로 주방일을 했다.
얼른 일을 시작하라는 케이크신의 뜻인지 출산 후 회복이 빨라 일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제야 멈춰있던 나의 시계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아기의 얼굴에 포동포동 살이 오르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가게를 오픈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한창 케이크 만들기의 어려움에 빠져있던 시기라서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가게일을 도와야 했다. 옆에서 도움을 주는 만큼 빨리 일이 마무리되고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일만 해도 벅찬데 육아까지 더해지니 야근의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됐다. 한편으로 아이를 데리고 우리만의 속도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해. 혼자 집에서 아이 보고 살림하면서 남편 퇴근 시간만 기다린다면 우울증 심하게 왔을 것 같아. 지금 되게 힘들기는 한데 애기 보면서 일을 같이할 수 있는 게 나한테는 확실히 좋은 점이야"
업무 중에는 유모차를 요리조리 굴려가면서 비좁은 주방의 가장 안전한 자리를 찾아 어떻게든 함께하려고 했다. 오븐 이외에는 불 쓸 일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직은 수유텀이 짧아 수시로 분유를 타 먹이면서 기저귀에 파란 줄이 뜨면 갈아주러 2층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울고 보채면 안아서 달래고 잠들면 냉장고 위에 이불을 깔고 재웠다. 주문이 많아지거나 오븐을 돌려야 하면 유모차를 태워 주방 입구에 두고 카운터를 봤다. 전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으라면 고민 없이 아기가 태어난 후 100일 동안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기간 동안은 거의 같은 질문들을 남편에게 쏟아냈다.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거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걸까? 왜 다들 장점만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거지? 나만 당할 수 없으니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생각을 모두가 하고 있는 걸까? 나 같은 애들은 이 현실을 알면 출산을 포기할 것 같아서 모두가 비밀약속이라도 한 걸까?
아이에게는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앞서 말한 100일의 기간 동안은 아기가 예쁜 줄도 몰랐다. 흔히 하던 ‘내 자식이라면 ~하겠다’라는 가정의 표현에 출산 후의 경험을 더하기가 망설여졌다. 그 말을 할 땐 왠지 마음속에 더 큰 무엇인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엔 내가 아이를 예뻐하는 마음이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 동안 상상했던 엄마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닌 것 같은데. 아이를 잘 보살펴야 하는 내 고생이 더 크게 자리해서 이대로 자식보다 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으로 남게 될까 봐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