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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Aug 21. 2023

차라리 일할래

혼자 아기 보는 거 못하겠어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임신한 상태로 야근을 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인 줄 알았더니 세상에 나온 아기를 키우는 일의 난이도는 정말 상상초월이었다.


2019년 12월 24일 오전.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수술실 침대에 누워 배에서 갓 나온 아이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그 순간 나는 영상을 되감기 해 수술 전 상황으로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기를 키우기 위한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험 범위조차 모른채로 시험장에 끌려와 앉혀진 느낌이었다. 육아책과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육아용품을 충분히 준비해두고 하는 그런 준비를 말하는것이 아니다. 동물들과도 첫 만남의 그 짧은 순간이 중요하다고 들었는데.. 다큐멘터리 속 출산을 마친 엄마들처럼 아이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싸 안고 감동해야 할 순간인 것 같은데 눈물이라도 한방울 떨어져야 할 타이밍에 난 평생의 숙제를 받아 든 느낌에 당황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서부터 나는 분리불안이 있었다. 엄마 등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엄마가 들어간 화장실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기다리며 계속 엄마를 부르고 집 담벼락에 붙어 놀면서 수시로 엄마가 집에 있는지 확인하러 들락거렸다. 성인이 되어서는 낯선 곳에 가면 두려움을 느껴 여행조차 맘껏 즐기지 못하는 성향으로 이어졌고 낯설고 두려운 일을 할 때면 늘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했다. 부모의 역할은 남편과 함께할 수 있지만 엄마의 역할은 누구와도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절대적으로 나 혼자 해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임신 기간 중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신생아 돌보느라 수면이 부족한 것보다 ‘엄마’로 거듭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꽤나 당황스럽고 복잡한 마음은 산후 우울감과 겹쳐 침대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식사거부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오는 순간 몇 번 씹기도 전에 뱃속에서 회오리바람이 부는 것처럼 우울감이 휙 몰아치는 것이 느껴졌다. 식판의 음식은 매번 그대로 남아 고스란히 버려졌다. 나만 안 먹으면 괜찮지만 아기가 젖을 물때도 같은 감정이 들어 수유 시간만 되면 긴장하며 인상을 썼다. 산후 조리원은 천국 이라더니 나에게는 고3 야간자율학습 시간의 벗어날 수 없는 책상과 같았다. 조리원 입소 이틀 만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의지할 가족들은 모두 육지에 있고 남편은 가게를 열어야 해 돌봐줄 사람이 없어 꼼짝없이 2주를 다 채우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일정기간 산후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의 존재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서서히 할 수 있었다.  




산후 도우미의 도움을 받는 기간마저 모두 끝난 후 오롯이 혼자서 아이를 봐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자 지구 아니 아니 온 우주의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았다. 서툰 엄마라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 아기를 안고 놓지 못했다.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고 화장실도 맘대로 갈 수 없는 상태는 고문 그 자체였다. 일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가고 싶을 때 화장실도 가고 먹고 싶을 때 잠깐이라도 먹기도 하잖아. 지금 딱 고문받는 것 같아”라며 울기도 했다. 어찌나 시간이 안 가는지 종일 핸드폰 화면의 시간만 들여다봤다. 아기가 30일일 땐 40일 차를 보며 부러워하고 40일 차엔 50일을 부러워하며 날짜 지나기만 기다렸다. 우울감이 몰아칠 땐 일하는 남편과 영상통화를 했다.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인채로 대화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한쪽 구석에 일하는 모습이 보이도록 핸드폰을 켜두라고 했다.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위로가 됐다. 혼자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그만큼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참다못해 집에서 3km 떨어져 있는 가게까지 아기띠를 하고 걸어간 적이 있다.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집에서 꼼짝하지 않는 나라서 전무후무했던 그때의 일은 지금도 종종 언급되고 있다.) 유모차를 끌고 갔으면 좀 나았을 텐데 100일도 안된 아기를 유모차에 놓고 차도 많이 다니는 길을 덜컹거리며 갈 수는 없었다. 1시간가량 걸어서 도착한 가게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나 이제부터 애기 데리고 나와서 일할 거야. 더 이상 혼자 집에서 아기 보는 거 못하겠어!” 그렇게 100일도 채우지 못하고 아이와 함께 업무 복귀를 선언했다.

아기를 안고 가게까지 걸어간 날.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카메라부터 켰다. 이런일이 처음이라 나를 닮은 사람이 걸어오는 줄 알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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