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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Sep 04. 2023

일도 하고 엄마도 하는 나의 새벽

내적갈등의 밤

아이가 잠들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간 밤 10시. 피곤하니 얼른 자야 한다는 자아와 지금이 뭐라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외치는 두 자아가 서로 자기주장을 펼치는 시간이다. 짜장면과 짬뽕은 짬짜면이라는 모두를 만족케 할 합의가 있었지만 내 갈등에는 경쟁만 존재할 뿐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 오징어게임의 최종 대결만큼이나 치열하다. 자장가를 부르다가 잠들어 버리면 오히려 낫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미련이 남을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소한 이점이 있고 아침의 기분은 좀 찝찝하지만 양질의 숙면으로 육체만은 피로로부터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질 좋은 수면은 다음 날 모든 활동에 중요한 자산이 된다.


진통 겪을 거 다 겪고 마지막에 제왕절개를 해야만 하는 선택에 버금가는 워스트 시나리오는 아이를 재우고 난 후에도 의식이 깨어있으면서 밤늦도록 허튼짓만 할 때다. 여기서 말하는 허튼짓이란 현대인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핸드폰을 붙잡고, 이 밤의 끝도 붙잡는 경우이다. 이 못 말리는 미련 맞은 짓의 결말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잠들거나 수직 낙하하는 핸드폰을 얼굴로 받고서 ‘아악’ 혹은 ‘에잇’이라는 외마디 외침이 터져 나온 후에야 끝이 난다. 깨어난 김에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거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정도의 사소한 소득조차 챙기기 못한다.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과 하릴없이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던 동공만이 내 신체의 전부인양 살아 있다가 졸음과 함께 사그라든다.


이 모든 것을 단지 의지만을 탓하기에는 오전부터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느라 체력이 바닥인 것이 문제다. 고갈된 체력 앞에 굳세게 살아남아 몸을 일으켜줄 의지는 내 안에 남아있지 않다. 여기서 또 한 번 내적갈등의 잔가지가 뻗어나간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으니 이 정도 핸드폰 삼매경은 허용범주라는 것과 이럴 바에 잠이나 한숨 더 자는 것이 낫다는 견해가 뒤엉킨다. 둘 다 맞는 말 같아서 어느 한쪽으로 마음을 굳힐 수는 없다.


한창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자정을 넘기고 나서야 타자기를 붙잡고 있는 지금도 한 줄 쓰고 천근 같은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핸드폰 다음 내 주의력을 앗아가는 것은 도서관에서 온 가족 이름을 총 동원해 빌려놓은 책무더기이다. 한두 시간쯤 인터넷에 시간을 허비한 후 들여다보는 활자이기 때문에 오래 보는 일은 없다. 읽어 내려가는 모든 문장들은 또 어찌나 주옥같은지 내가 왜 처음에 책이 아닌 핸드폰 따위를 집어 들었는지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두어 페이지쯤 넘겨 보고 나면 들고 있는 책이 1kg짜리 아령만큼 무겁다.




의지의 세력 다툼에서 6.7인치 디스플레이를 이겨내야 새벽시간 유의미한 일들을 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시간인 밤 10시 이후의 시간을 취하려면 몸이 좀 덜 피곤해야 아이가 잠든 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정말 독서에 욕심이 난다면 하루 이틀 전부터 페이스조절을 해야 한다. 마치 홀케이크 예약 과정과 같다. “당일 홀케이크 있나요?”라는 전화 문의에 “아니요 저희는 모든 케이크를 전날 만들기 때문에 오늘 드릴 수 있는 여유분은 없습니다.”와 같은 안내처럼. 당일 체력이 좀 남아있냐는 문의에 긍정적인 답변을 하려면 하루이틀쯤 전부터 축적해 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휴무일에 늘 특별한 것을 상상했는데, 아이를 재운 늦은 밤 독서가 그 특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파에 앉아 책 한 자 들여다보는 이 순간을 위해 휴무가 존재했나 보다.


어느 휴무일의 일기이다.


오늘은 비록 일찍 잠들어 체력을 모으는 쪽으로도, 뭐라도 해서 하루치의 성취감을 이루는 쪽으로도 승리의 깃발을 잡지 못해 망한 기분을 느끼고 말았지만 내일을 위해 그만 미련을 버리고 잠자리로 돌아가야겠다. 아~함 너무 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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