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기 전에는 어느 날 갑자기 아기가 "엄마" "아빠" 말을 해서 감격하는 순간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키워 보니 아기는 옹알이를 할 때부터 그냥 "음마음마음마" "압빱빠빱빠" 한다. 많은 나라의 언어들에서 '엄마' '아빠'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 비슷한 발음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겠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떠드는 것이라도 나의 얼굴을 보며 발음할 때는 괜시리 설레기도 했다.
우리 아들은 꽤 일찍부터 옹알이를 한 편이다. 나의 육아 기록에 의하면 아들은 50일 무렵부터 옹알이를 시작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안 됐을 때부터 떠들어제꼈고(?), 학부 때 독서교육론을 감명 깊게 들은 나는 옹알이를 다 받아주고 같이 대답을 해 줘야 아기가 만족하고 언어 능력이 풍부해진다는 강의 내용을 상기시키며 열심히 따라 해 줬다. 5개월 때는 드디어 조금은 의미 있는 듯한 "아빠빠빠빠" 등의 말을 하면서 많이도 떠들었다.
돌 무렵에는 아빠가 퇴근하고 현관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압빠!" 라며 좋아했다. 비슷한 시간에 문이 열리면 바로 아빠인 줄 알았던 것도 신기하고, 종일 보고 싶었을 아빠를 외치는 아들이 참 귀여웠다. 태어난 지 이제 4년 반이 넘은 아들은 여전히 아빠가 퇴근하면 "아빠!!!" 하면서 현관으로 뛰어가서 아빠를 안아준다. 아이를 낳고 보는 흐뭇한 장면 중 하나다. 우리가 정말 가족이구나, 느낄 수 있는 시간.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사실 모성애라는 게 잘 없었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고 생각되어서 때 되면 밥주고, 응가하면 기저귀 갈아주고 했었지 내가 엄마라는 게 잘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들이 날 보고 "음마음마" 할 때, 이상하게 심장이 간질거리고 어색하면서도 이 아이가 나와 정말 가족이구나 싶어 사랑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엄마라니! 아들의 서툰 발음 속에서 나의 새로 생긴 정체성을 마주하게 됐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요즘은 "엄마!"를 하루에도 수백 번 불러대서 이제 그만 좀 나를 불러줬음 좋겠다 싶을 정도로 많이 컸다. 이제 너무 자주 들어 '엄마'라는 말 속에 느껴지는 특별함은 없지만, 종종 여전히 내가 이 아이의 엄마고, 이 아이에게 전부인 부모라는 생각에 애틋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아들의 엄마는 언제까지나 아들에게 힘든 인생의 길에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고 "엄마!" "아빠!"라고 한 번 부를 때마다 아들의 세상이 밝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