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하면 좋겠지만, 지금은 집중할 때
개인의 자격증과 기업의 라이선스를 비교해 보자.
신입사원에게 자격증은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다. 자격증으로 특정 분야에 대한 학습과 노력의 시간을 보여줄 수 있다. 인사담당자들이 볼 때 공란으로 있는 것보다는 당연히 빼곡히 채워진 자격증이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경력직 면접을 볼 때 관련 자격증이 페이지를 넘어 50개가 넘었던 지원자도 있었다. 처음에는 ‘우와, 대단하다 ‘ 싶었지만 자격증이 많아도 너무 많으니까 ‘이거 다 쉽게 따는 자격증인가 ‘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자격증은 신입일 때 더 쓸모가 있는 것 같다. 경력사원은 자격증보다 실제로 수행했던 업무의 결과가 중요하다. 일을 잘하는 직원이라면 "무엇을 배웠다", “무엇을 할 수 있다” 가 아니라 "무엇을 해냈다"를 보여줘야 한다.
자격증이나 라이선스는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첫발을 디디는 상징이다. 라이선스 취득 자체가 내 땅이 되었다는 증빙이 아니다. 들어가기 어려웠던 지역에 한 발을 내딛는 것, 즉 시작의 의미다. 라이선스는 권한을 주지만, 능력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격 뒤에 숨겨진 본질적 역량이다.
마음이 불안할 때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격증이다. 회계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회계 관련 자격증을 따고, 데이터 업무에 관심 있는 사람은 데이터 관련 자격증을 딴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면 어떨까? 계획적인 사람들도 불안한 마음이 들면 다른 사람들이 딴다는 자격증을 마구잡이로 준비하기도 한다.
기업이 하는 일도 개인과 다르지 않다. 장기적으로 우리 회사가 가려고 하는 방향, 그 길에 필요한 라이선스, 라이선스 취득후 하려는 일들이 명확하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불안하고 뭔가 해야만 할 것 같고 지금 딱히 손에 잡히는 뭔가가 없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라이선스 취득이 아닐까 싶다. 뭔지 모르지만 일단 기출문제를 공부하고 동영상 강의를 보면 자격증 취득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라이선스 취득을 위한 길도 정해져 있으니까, 쉽든 어렵든 일단 하면 되기는 되니까.
라이선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취득’이 아니라 라이선스가 왜 필요한지, 취득하고 나서는 무엇을 할지 하는 부분이다. 오랜 준비가 필요한 자격증과 라이선스 취득은, 취득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달리는 경우가 많아서 취득하고 나면 그 후의 발전이 없는 경우가 많다. 30년 동안 매년 같은 내용으로 강의를 하는 교수나, 의사 면허를 따고 나서 환자와 소통 없이 매뉴얼만 읊어대는 의사, 라이선스를 따기만 하고 활용하지 않는 기업이 다 비슷한 경우다.
데이터 분석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실제 분석을 잘한다고 할 수 없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과정에서는 시험 점수를 넘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해결 능력, 도메인 지식이 더 중요하다. 자격증이나 라이선스는 단지 시작점일 뿐이다. 그 이후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한이 종료되는 페이퍼가 되거나, 계속해서 실제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요술램프가 된다.
데이터 관련한 라이선스도 많다.
마이데이터, 개인사업자 신용평가업, 데이터 전문기관, 가명결합 전문기관, 데이터 가치평가… 라이선스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발전 없이는 더 이상의 성장도 어렵다. 라이선스라는 건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이 잘 될수록 경쟁자는 많아지기 마련이다. 초기 시장을 완전히 선점하거나, 발 빠르게 변화해가지 못하면 그냥 수많은 라이선스 사업자 중 하나가 되기 쉽다.
데이터 비즈니스의 미래도 결국 본질적인 것에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모두 걷어내고 아주 기본적인 것에 집중해야 한다. 데이터 자체는 사용이 가능하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사업 영역에서는 데이터를 통해 고객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라이선스가 필요할 수 있지만, 라이선스 취득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데이터가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라이선스가 있으면 사업이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자격증이나 라이선스로 문을 열었다면, 이제 우리는 문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껍데기가 아니라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멈춰있지 않게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라이선스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안에서 만드는 본질적인 성장을 위한 준비, 그 준비의 가짓수를 늘려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