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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 KPI

직감은 가라, 데이터여 오라

by 브라키오사우루스


일을 하고 경험이 쌓일수록 ‘내가 좀 알고 있다 ‘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다른 사람의 말을 몇 마디 듣고는, 이 이야기는 쓸모없는 이야기라는 판단을 금방 내려버리기도 한다. 심사숙고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그건 안 되는 거야, 이건 되는 거야’ 하는 판단을 몇 초 만에 해버리기도 한다. 직감은 쌓기 어려운 것이고 중요한 순간에 아주 요긴하게 빛을 발하지만, 일상적인 업무 전반에서 직감을 활용한다는 건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숫자로 말하는 조직> ,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같은 문장들을 자주 듣는다. 흔하게 듣는 일상의 말인데도 실제로 이렇게 돌아가는 조직이 흔치 않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적용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어려운 주제다.


데이터 문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데이터에 대한 접근이 쉬워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데이터라는 게 이른바 특혜처럼 특정 몇몇만 확인할 수 있고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서는 ‘데이터 문화’를 만들기 어렵다. 버거킹 매장의 키오스크는 공급자의 비용절감과 고객 응대의 피로도를 줄이는 방안이지 고객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키오스크를 사용하기 어려운 고객이나, 개별적으로 확인할 것이 있는 고객들에게 키오스크는 주문을 더 어렵게 만드는 장치일지 모른다.


데이터 접근성을 높인다는 것은 키오스크를 만드는 게 아니다. 데이터가 일상 업무에서 자주 이야기되고 그 내용을 보통의 직원들이 이해할 수 있고, 필요한 데이터가 있다면 sql이나 파이썬을 배우지 않고도 스스로 필요한 것을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있다.

데이터 문화를 만들려고 할 때 버거킹의 키오스크 같은 것을 만들려는 시도들이 많다. 키오스크는 주문을 잘했던 사람은 그대로, 원래 주문이 어려웠던 사람은 더 어렵게 만들지 모른다. 그럼에도 키오스크 말고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 많지 않았는데 이제는 달라지지 않을까? AI의 등장으로 진짜 변화가 가능할지 모른다. 이제 매장마다 조금씩 다른 키오스크 작동법에 익숙해지지 않아도 일상의 문장으로 물어보면 해결책을 받아 볼 수 있는 시대가 성큼 왔다.


다음으로 생각이 되는 건 지속성이다. 책을 한 권만 읽고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보다 위험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데이터도 한 번만 본 사람이라는 건 시작을 안 한 것과 같다. 데이터는 오늘도 보고 내일도 봐야 한다. 이렇게 될 수 있으려면 반복해서 자주 보는 데이터 항목들이 모니터링될 수 있게 대시보드로 구축되면 좋다. 이 대시보드라는 건 참 어려운데,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대시보드의 탄생과 조용한 퇴장을 지켜봐 왔다.

의사결정권자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 대시보드에 대한 시도가 참 많았다. 올해는 이렇게 개발해 보고 내년에는 이렇게 만들어보고 버전도 다양하게 만들어졌지만 지금 살아있는 대시보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만들고 시연하고 거기까지, 그 후에는 접속링크나 개발해 놓은 페이지만 남아있고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 의사결정권자 소수만이 이용하게 만들어진 경우 높으신 분들에게 활성화 마케팅을 하기도 쉽지 않다. 화려한 표나 차트, 개발의 난이도 이런 것들보다 이용 편의성이 중요하다. 쉽게 접속할 수 있고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면 족하다.


회사에는 한 가지 직무를 오랫동안 수행하는 베테랑들이 있다. 베테랑은 존경받는 사람이면서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다. 일부는 완전한 프로로 성장하지만 일부는 고인 물이 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방향의 차이는 계속해서 성장하느냐 그냥 반복하느냐에 있다. 30년간 교직에 몸 담은 사람들 중에도 30년간의 노하우로 지식을 전달하는 스킬이 계속해서 올라가는 교사가 있는 반면, 교사가 된 첫해에 했던 강의를 그냥 30년간 반복하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게 된 데이터 관련 지식을 혼자서 꼭 끌어안고 있는, 내가 없어지면 아무도 모를 텐데 하면서 한번 다 당해봐라 하는 마인드의 직원들이 보인다면 업무에서 빨리 배제시켜야 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에 해를 끼치는 존재들이다.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지식은 모두가 알 수 있게 하고, 나는 지식을 더 쌓아서 다시 고급 레벨로 성장하면 된다.


특히 데이터나 AI, 개발과 같이 특수한 직무라고 생각되는 포지션에서 후배들에게 업무를 알려주지 않는 선배, 자동화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을 통해 업무가 진행되도록 꼭 끌어안고 있는 직원들을 더러 본다. 이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은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데이터로 일하는 것이 일상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회사 전체에 편안하게 흘러야 한다. 일부만 볼 수 있거나, 일부만 다룰 수 있거나,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서 설명회가 진행되면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데이터에 관심이 생겼다가도 내가 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껴지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데이터를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도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시작점이다. 데이터를 조금만 활용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보고서를 쓸 수 있고,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고, 데이터 기반으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데이터 활용 저변을 넓히는 것, 그야말로 발에 차이는 데이터를 만드는 것,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게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대중화되는 것, 그것이 데이터로 세울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KPI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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