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과 기업에 무해한 데이터
무언가를 판다는 것의 가치는 쉽게 평가절하되곤 한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를 팔고 은행은 보험을 팔고 이마트는 식자재를 팔고 롯데호텔은 숙박권을 팔고 웅진씽크빅은 학습지를 팔고 네이버는 광고배너를 판다. 기본은 파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팔든, 남에게 사 와서 팔든, 만들어 팔든 차이는 있지만 기업의 기본은 파는 것이다. 상품, 서비스, 기술이라고 달리 표현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구조는 비슷하다.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처럼 기업은 팔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
그럼 데이터를 판다는 것은 어떨까? 또 AI를 판다는 것은?
먼저 데이터가 왜 팔리는지 생각해 보자. 산다는 건 필요하다는 말과 동의어다. 명품 백처럼 나를 보여주는 수단일 수도 있고 레고블록처럼 그냥 좋아서 사는 걸 수도 있다. 아무튼 필요한 데가 있어 산다. 좋은 자동차를 사고도 주차장에만 두는 사람이 있고 매일 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사고 나서 어떻게 쓰는지는 조금씩 다르다. 필요해서 사는 거라면 데이터가 많이 유통되어야 모두에게 좋은 거 아닌가?
해외에서는 개인 데이터도 활용이 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개인 데이터는커녕 가명데이터 유통도 자유롭지 못하다. 나의 개인 정보가 유출될 일을 걱정하는 것은 너무나 앞선 걱정이다. 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유통할 수도 없는데 나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데이터를 악의적 목적으로 활용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가게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총을 든 강도에게 털릴까 봐 걱정하는 셈이다. 총기사용이 허용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말이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해야 할 이유는 몇 개 없는데 하지 말아야 될 이유는 수없이 가져다 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볼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다. 잘 모르는 분야니까 계속 참여를 안 할 것인가 모르니까 한번 시도를 해볼 것인가?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데이터는 아직도 새로운 분야로 생각된다.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할 때는, 그 업무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그거 왜 하는 거야? 일을 좀 효율적으로 해야지, 그렇게 하면 안 돼 같은 부정적인 말들. 맞는 말이기도 하고 듣기 싫은 말이기도 하다. 내가 안 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혔을 때는 하기 싫은 마음을 지지해 주는 편안한 말이기도 하고.
교통사고가 날까 봐 자동차 판매를 규제하지 않는 것처럼, 개인정보 유출이나 예상할 수 없는 문제를 우려해 데이터 거래를 막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교통사고가 덜 날 수 있도록, 운전을 편히 할 수 있도록 기술과 제도는 발전하고 있다. 데이터를 잘 모르는 사람도 접근할 수 있고 분석을 쉽게 할 수 있게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데이터야 말로 우리 모두를 이롭게 해주는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자동차를 파는 일도 자동차 원가와 생산공정과 해외수출, 이런 실질적인 것이 중요하지만 더 원대한 포부를 갖는다. 현대자동차의 비전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동행‘이다.
데이터로 이뤄낼 수 있는 우리의 원대한 포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창업을 준비하는 개인에, 신제품을 출시할 기업에, 뭔가를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플러스가 되는, 그야말로 무해한 상품이다. 한쪽이 뭔가를 얻으면 반대쪽이 잃고, 판매가 많이 되면 사람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거나, 가족 간의 싸움을 일으킨다거나, 부실경영을 일으킨다거나 하는 것 없이 파는 자도 사는 사람도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데이터, 이 좋은 것을 세상에 알리고 유통하는 길에 장애물이 참 많다.
‘데이터를 팔지 말고 그냥 공짜로 줘라, 그러면 되잖아 ‘ 말하는 사람도 있다. 데이터도 고객이 활용하기 쉽게 만들려면 그냥 쌓아둔 데이터를 퍼서 파는 게 아니라 정제해야 한다. 없는데 필요한 건 개발해야 한다. 그냥 주면 데이터와 도메인 지식이 있는 아주 소수만 활용할 수 있다. 설명해줘야 하고 때로는 분석을 대신해줘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공짜로 진행하려는 기업이 있을 수 있을까? 공짜로 받을 때는 공짜라는 것에 발목 잡혀 서비스가 늦어져도 자꾸 고장이 나도 불만을 제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데이터 활용에 연령을 매긴다면 “전체이용가”가 아닐까 싶다. 3세 이상도, 15세 이상도, 성인이용도 아니고 그냥 모두가 이용할 수 있다. 무해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신문 사설이나 책을 읽는 것만큼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데이터를 누군가 자꾸 팔아야 세상에 널리 알려질 텐데, 그렇다면 데이터를 판다는 것의 가치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데이터를 둘러싼 모든 것 중에 판다는 것을 가치를, 다가올 ‘돈 버는 AI’와도 연계될 이 중요한 사업적 가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