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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Feb 15. 2024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래도

그래서 나는 몇 살이고 싶습니까

 

언젠가부터 몇 살이냐고 물으면 셈을 하느라 시간이 한참 걸린다. 나이를 잊고 살아서 그런가. 잊고 싶어서 그런가. 나이 세는 법이 바뀌어서 그런 걸까. 바뀌기 전부터 이랬으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빠른 년생으로 태어나서 말도 탈도 많은 삶을 살았다. 탈이 많을 거 뭐가 있냐고 묻는다면 이건 정말 미묘하다. 빠른 년생으로 살아봐야 아는 불편함이라.



그래서, 너 몇 살인데?


 빠른 년생인 나는 학교를 일곱 살에 들어간 호랑이띠다. 소띠 친구들과 12년을 함께 보냈다. 엄마는 초등학교 입학식날 운동장 맨 앞줄에 서있는 나를 보고 입학을 무르고 일 년 더 키워 데리고 와야 하나 고민이었단다. 성인이 되어 가까스로 160을 찍은 내 키를 진심으로 다행이라 여기신다. 나이와는 별개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늘 작아서 앞자리에서 고만고만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친구들의 나이를 대답했다. 빨리 나이를 먹고 싶은 시절이었다. 나의 바람을 간파한 가족들은 내가 올림 나이를 말할 때마다 잊지 않고 한 살 어린 내 나이를 짚어주곤 했다. ‘넌 86년생이잖니.’하고. 맵다 매워. 그냥 넘어가주면 안 되나.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내 나이는 뭔가 조금씩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벌써 20년 전, 당시에는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안주가 수십 가지 나오는 룸형 술집이 인기였다. 친구들과 수업을 마치고 처음으로 그 술집에 가기로 한 날, 나는 입구 민증 검사에서 막혔다. 친구들은 모두 20살 성인이지만 나는 법적으로 19살이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다. 나는 빠른 년생 아닌가. 12년을 한 살 더 먹은 친구들과 지내왔는데 대체 왜 저들은 되고 나는 안 되느냔 말이다. 학번을 아무리 읊어도 민증을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사장님은 술집 카운터 모니터로 학교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재학 증명을 해내고야 마는 나를 보며 질린다는 듯 들여보내주었다. 아직도 어제처럼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빠른 년생들은 꼭 그렇게 말하더라.


 20대의 가운데, 모두가 나이를 먹기 싫어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친구들과 술집을 갔는데 민증검사를 하려고 하길래 (주로 술집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네) 내가 ‘얘는 85년생이고요, 저는 빠른 86년생이에요.’라고 말한 것을 친구 1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깔깔대며 회상한다. 친구 2는 아직까지도 내가 86년생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한 살 어리게 말한다며 억울해한다. 어느 포인트에서 어이없어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내가 85년생이라고 말하면 그게 거짓말 아닌가. 나는 엄연히 86년생이 맞고, 학교를 빨리 들어갔고! 너희 친구가 맞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나를 포함해 주변인 모두 나이를 천천히 먹고 싶은 시점에 들어서면서부터 빠른 년생을 보는 관점이 다르게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근래 풋살을 배우면서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시원하게 나이부터 밝히는 곳은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앵무새처럼 늘 말하던 대로 했다. ’저는 86년생인데, 학교는 85년생들과 같이 다녀서 04학번이에요.‘ (부연 설명이 긴 이유는 처음부터 저리 말하지 않으면 족보가 꼬인다고 핀잔을 먹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그런다.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고 싶은지 빠른 년생들은 꼭 그렇게 이야기하더라며. 혼잣말인 듯싶으나 그러기엔 내 귀에 너무 박히는 말투였다. (나이를 들어보니 나보다 5살 정도 어렸는데 진짜 그렇게는 안 보였다.)


 내 나이로 말해도, 한 살 많은 나이로 말해도 누군가는 불편해한다. 요령껏 이래저래 상황에 맞게 아무렇게나 이야기하는 게 속 편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래두


 살면서 적어도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나 속해있는 집단은 나이가 중요하지 않고, 동갑내기끼리만 ’친구‘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이제 곁에 남아있지 않다. 나에겐 다섯 살 많은 친구도 있고 열 살 어린 친구도 있다. 서로 지킬 것을 지키며 존중으로 서로를 대하면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친구란 배울 점이 있는 사람끼리 마음을 오가며 맺어졌다. 그럼에도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이렇게 열을 올리는 이유는 인생에 축적된 빠른 년생의 비애 때문인 것 같다.

 설 연휴에 가족들과 모인 김에 곧 돌아오는 내 생일을 위해 케이크를 사러 갔다. 초를 몇 개 넣을까 묻는 점원의 물음에 내가 몇 살인지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렀다. 진짜 나이는 암시롱 중요하지 않다. 내가 올해 서른여덞이던가, 서른아홉이던가.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은 마흔인가. 그러면 나도 마흔인가. 그래도 좋고. 아니어도 좋고.


글/그림 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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