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아현 Apr 10. 2024

2.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있어?

1999년 11월, 내 인생이 바뀌어버렸다.

눈을 떴다. 큰딸이 내 손을 잡고 울고 있다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엄마, 엄마, 나 누군지 알겠어?"

안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왜 우냐고 손을 올려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데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는 원수 같은 남편도, 작은딸과 아들도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기억나지 않지만, 큰일이 생긴 건 분명하다.

머릿속 생각은 뻔한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확실하다.

"엄마, 나 누군지 알면 눈 깜박여봐."

눈을 깜박거렸다.

"엄마가 나 알아본다. 엄마 깨어났어. 엄마 살았어."

큰딸이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내가 쓰러졌구나. 지금 여기는 병원이고, 애들은 내가 죽을 알았구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며칠 전 난 고3인 막내아들 도시락을 싸기 위해 일찍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 게 가을이 끝나가는 것 같았다. 싱크대도 없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쌀을 씻으려고 한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이후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수술실의 강한 불빛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엄마 지금 3일 만에 깨어난 거야. 내 말은 들리지?"

큰딸과 작은 딸이 양쪽에 붙어 얼굴을 비비며 난리다. 멀리 떨어져 있는 순한 아들은 누나들의 등살에 치여 살더니 지금도 내 곁에 오지 못한 채 울고만 있다. 원수 같은 남편은 양심이 있으면 울지 말아야지 왜 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나이 51살. 이제 두 딸은 다 키웠고, 막내만 대학 가면 자유로울 수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쓰러지기 전 한달 동안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은 둘째 딸 산후조리를 해주었다. 며칠 손발이 저리긴 했지만, 밤새 손주 보느라 생긴 근육통 정도로 생각했다.


나는 원수 같은 남편이 평생 곁눈질 하며 사는 꼴을 보느라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남편은 열 명이 넘는 인부를 거느리고 노가다를 했다. 요즘 말로는 인테리어 사업이었겠지만 그땐 그냥 노가다였다. 새벽에 일어나 세 아이 도시락 6개를 싸고, 낮에는 열 명이 넘는 인부 밥을 해 먹였다. 늘 남 치다꺼리만 하다 내 일을 하고 싶어 3년 전부터는 요즘 인기 좋은 빨래방 운영도 시작했다. 그냥 기계로 옷을 빨아 잘 넣어주기만 해도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한 통에 3000 원하는 빨래를 속옷까지 다리미질해 주었다. 손님들은 깨끗하게 다려진 빨래를 좋아했다. 손님은 점점 늘어갔고, 돈은 크게 안되면서 몸은 축나고 있었다. 그래도 빨래를 찾아가며 좋아하는 손님 모습에 다리미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무리를 한 탓인지 몸이 좋지 않더니, 결국 몇 달 전 심장판막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심장판막이 제 역할을 못해 혈액 찌꺼기를 토할 수 있으니 꼭 약을 챙겨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낮엔 일로 바쁘고, 밤엔 둘째 딸을 조금이라도 재우고 싶어 갓 태어난 이쁜 손주까지 돌보느라 약 먹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둘째 딸과 손주를 집으로 잘 돌려보낸 후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났다. 그런데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쓰러진 것을 큰딸이 제일 먼저 발견했다고 한다. 남편이 뛰어와 나를 가까운 병원으로 데리고 갔지만, 귀 얇은 남편은 뇌졸중에는 침이 좋다는 지인 전화에 병원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의원으로 나를 옮겼다. 온몸에 침을 맞았지만 소용이 없자 남편은 다시 나를 병원으로 옮겼고, 의사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그 사이 내 뇌세포는 80% 가까이 죽어버렸다. 그렇게 난 51살의 나이에 뇌병변 장애인이 되었다. 움직이지 않는 내 몸을 보면서 이 꼴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모르고 용기도 없었다.


석 달이 지나 퇴원했다. 나의 터전이었던 빨래방은 빨래더미 몇 개만 쌓여있을 뿐 휑했다. 냉장고에 반찬이라곤 다 쉬어버린 김치뿐이고, 가스레인지 위에는 카레가 담긴 냄비가 있었다.

아들이 다가와 말했다.

"엄마 없는 동안 누나가 카레만 해줘서 이제 카레 쳐다만 봐도 토 나올 것 같다."

공부만 한 큰 딸이 카레라도 할 줄 알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20년을 살아온 집이 낯설어졌다. 매일 쓸고 닦으며 집이 참 작다 생각했는데, 누군가 부축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게 되자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멀고 까마득해 보였다.  


51살 나의 겨울은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듯 시리고 차가웠다.  



엄마는 51살에 뇌졸중으로 편마비가 되었다. 엄마의 인생은 그 이전과 이후로 바뀌었다. 아주 많이.

이전 01화 1.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