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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현 Jun 23. 2024

김밥 한 줄 하실래요?

커피도 아니고 김밥을...

"저... 혹시 김밥 한 줄 같이 하실래요?"

"네?"



대학교 때 집에 오려면 버스를 두 번 타야 했다. 학교 앞에서 부산역까지는 친구와 같은 버스를 타고 왔고, 역에서 내리면 각자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헤어졌다.  


그날도 친구와 수다를 떨며 역까지 온 후 각자의 버스 정류소로 향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정류소 앞 상가 처마 밑에 몸을 숨긴 채 서 있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다가왔다. 꾸부정한 어깨로 조심스럽게 걸어오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김밥 한 줄 같이 하실래요?"

"네? 김밥요?"

"네... 혹시 시간 되시면..."

'이거 뭐지? 나한테 시간 되냐고 묻는 거야? 근데 커피도 아니고, 무슨 김밥을?'

어이가 없었다.

"아니요. 저 밥 먹었고요, 저기 버스가 와서요.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처음 보는 남자에게 쌀쌀하게 말한 후 급하게 뛰어 버스를 탔다.

'세상에 김밥이라니! 내가 뭐 밥 먹자 해야 넘어가는 여자로 보이나?'

태어나서 남자가 처음 말을 걸어왔는데 설레기는커녕 기분만 나빴다. 누가 봤을까 부끄럽기까지 했다.


기분 나빠하며 버스를 탄 후 차창 너머 서 있는 남자를 다시 보았다. 그 남자는 버스 속 나를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런데 딱 봐도 힘없고 슬퍼 아니 배고파 보였다.

'뭐야. 혹시 진짜 배고파서 나한테 김밥 사달라 한 거야? 나한테 시간 물어본 게 아니고 밥동냥한 거였나?'

길에서 남자가 말을 건 게 처음이라 좀 예쁜 애들이 다 겪는 그런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사람은 배가 고파 사줄 같은 내게 다가온 것 같았다.

괜히 오버한 내가 부끄럽고, 배고픈 그 사람이 안쓰러워 보였다.

'괜히 설레발쳤네. 김밥 드시라고 돈을 좀 줄 걸...'

 

밥 사줄 것 같은 여자!

그때부터 난 사회복지사가 될 상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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