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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현 Jul 14. 2024

할아버지와 연

세상에서 제일 멋진 연!

사무실에 있는데 아들이 울면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만 오늘 연 못 만들었어."

"왜?"

"선생님이 가오리연 만들어야 되는데 나만 방패연이래!"

"뭐?"



우리 집은 퇴근이 늦은 나보다 시아버님이 늘 아이들 알림장을 먼저 본다. 그리고 아이들에겐 숙제했냐를, 나에겐 준비물 챙겼냐를 몇 번을 반복해서 묻는다. 시아버님은 그게 가족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아들 알림장에 연 만들기 재료가 준비물로 적혀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시아버님이 준비물 챙겼냐를 몇 번을 물어야 하는데 그날따라 별말씀이 없으셨다.  

조금 이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내일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 줄 생각이었다.


다음날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려고 나서는데, 시아버님이 검정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거 오늘 아 학교 준비물이더라. 내가 어제 챙겨뒀으니 가져가라."

"네? 문방구에서 사면되는데요..."

"사긴 뭘사누? 돈 아깝게. 내가 다 만들었다."

"만들었다고요?"


이상하게 생각하며 검정 비닐봉지를 열어보니, 길고 짧은 대나무와 가운데 구멍 뚫은 달력 종이, 하얀 명주실과 풀 등 정말 내가 어릴 때 챙겼을 법한 물건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아버님 요즘은 이런 준비물 안 가져가요."

"우리 애들 어릴 때 내가 다 이래 만들어줬다. 어제 내가 아파트에 있는 대나무 꺾어가 종일 다듬은 거다."

"예? 아파트 화단에 대나무를 꺾었어요? "

"응."

"아버님.. 그건 아파트 공동물품이라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돼요."

"마 됐다. 아무도 안 봤다."

시아버님은 옛날 뒷산에서 땔감 나무 베듯 아파트 화단 나무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부끄럽고 속상했지만, 아침부터 잔소리를 할 순 없었다.

살짝 인상만 쓰고 바쁜 듯 비닐봉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이거 좀 그렇지? 엄마가 문방구에서 사줄게. 이건 그냥 버리자."

"그래도 할아버지가 만든 건데 그냥 들고 갈게."

초등학교를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비닐봉지를 가방에 넣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정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들이 대견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아들이 엉엉 울면서 전화가 왔다.

"엄마... 엉엉.. 오늘 나만 연 못 만들었어. 선생님이 문방구에 파는 가오리연을 만드는 건데, 나만 방패연이라 따로 설명해 줄 수 없다고 준비물 가방에 넣으랬어."

"그래서 못 만들었어?"

"어... 친구들 만드는 거 구경만 했어.. 엉.. 엉...."


한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었을 아들을 생각하니 융통성 없는 선생님과 아파트에 민폐까지 끼친 시아버님이 원망스러웠다. 일단 속상했을 아들을 진정시키고 집에서 보자며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더 속이 상했다.

퇴근 후 아들을 달래려고 급하게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현관문 앞에 오니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집 밖으로 새어 나왔다.  

'벌써 기분이 풀렸나?'


띠띠띠띠 띠띠띠 삐비빅!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아들이 날지도 못하는 방패연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게 아닌가!

"엄마! 이거 할아버지랑 만들었어."

아들은 촌스러운 방패연을 내 눈앞에 내밀었다. 교에서 만든 그 방패연이었다.


"오늘 학교에서 속상했던 건 괜찮아?"

"응. 아무렇지 않아. 그리고 이게 가오리연보다 더 멋져."


울며 전화했던 아들도 종일 마음 졸인 나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시아버님께 아이들 준비물은 내가 챙길 테니 신경 쓰시지 말라고 말하려 했는데, 차마 말하지 못했다.

단지 아파트 화단에 있는 나무는 손대면 안 된다는 말만 조용히 건넸다.  


그날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나보다 더 커 보였다.



시아버님은 초등학교 6년 동안 아들의 하교를 챙겼다.

잘 걷지 못해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들을 기다려 가방을 들어주었다.

매일 문방구에서 몸에 좋지 않은 간식을 사 먹이는 게 내심 싫고 속상했는데

다 자란 아들은 그때가 제일 좋았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 집에 제일 못난 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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