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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아현 Jun 16. 2024

가...가...강도야!

내가 널 지킬게.

"니가 나가봐. 무슨 일 생기면 내가 구해줄게! 내가 갔다가 잡히면 니가 날 우째 구할 거고?"

겁쟁이 아빠의 변명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자다가 눈을 뜨니 양복 입은 아저씨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일어나네. 학생! 눈 제대로 떠봐."

".... 누구세요? 무슨 일이에요?"

"어이구. 집에 강도가 들어와서 난리가 났는데도 이렇게 잠을 자다니..."

"예?"


놀라서 방을 뛰어나와보니 아빠, 엄마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동생들은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집에는 경찰 네댓 명이 집구석구석을 살폈고, 한 명은 엄마, 아빠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정말 집에 큰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시간 이상 여기저기 살펴보던 경찰은 특별한 단서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고, 우리 집은 아침 뉴스에 나왔다.


"엄마! 어떻게 된 건데? 무슨 일이야?"

엄마는 묻는 말에 대답하는 대신 아빠를 째려봤다.

"그래, 옥상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나한테 나가보라 하는 게 말이 되나?"

"아니... 내가 나갔다 다치면 니는 날 못 구하잖아. 만약에 니가 나갔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널 구해주려고 그랬지."

"웃기고 있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대충 상황이 이해됐다.




월요일 새벽, 옥상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잠귀가 밝은 아빠는 그 소리에 놀라 엄마를 깨웠다.

"얼어나 봐라. 옥상에 무슨 소리가 난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대답했다.

"발자국 소리 같은데..."

"니가 가봐!"

"뭐? 내가?"

"그래 니가 옥상에 올라가서 뭔 일이 생기면 내가 구하러 갈게."

"그게 무슨 말이고?"

그렇게 서로 니미락내미락 하는 사이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정 옷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넥타이를 들고 있었다.

"꼼짝 마! 조용히 안 하면 옆 방에 자고 있는 두 딸 죽여버린다."

그렇게 위협하며 엄마 아빠 손을 넥타이로 묶었다.  

"있는 돈 다 내놔라. 돈만 주면 아무 짓도 안 하고 갈 테니!"  

그런데 엄마는 넥타이로 묶여 있던 팔이 덜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옆을 쳐다보니 남편이 눈을 꼭 감은 채 덜덜덜 떨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사람이 진짜...'

엄마는 강도에게 말했다.

"우리 돈 없어요. 어제 주말이라 애들 데리고 놀러 갔다 온다고 돈 다 썼어요."

"돈이 없으면 돈 되는 거 다 내놔!"

강도는 집 안을 뒤지기 시작했고, 엄마 아빠 반지 등 폐물과 지갑에 있던 돈을 들고 달아났다.


아빠는 강도가 나가자 간신히 넥타이를 풀고 전화기를 들었다.

"가.. 가.. .강도요. 강도가 왔어요."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기가 차서 말했다.

"주소를 말해야지?"

"아. 맞다."

아빠는 다시 경찰서에 전화해 주소를 말했다.


엄마는 평상시 큰소리치던 아빠가 이렇게 겁쟁이였는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엄마는 우리에게 아빠의 실체를 말했다.

"와. 너거 아빠 남자가 돼가지고 그런 상황에 나를 구해주기는커녕 나가라고 하질 않나, 강도 앞에서 눈도 못 뜨고 덜덜덜 떨더라. 너거가 그런 아빠를 봤어야 되는 건데..."

아빠는 어이없다는 듯 우리에게 엄마의 실체를 말했다.

"야... 너거 엄마 사람이 아니다. 간덩이가 부어가지고, 강도랑 대화를 하더라."

난 두 분의 대화가 기가 차서 웃었다.


그런데 여동생이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와! 그 와중에도 니는 잠이 오더나? 진짜 대단하다."

동생들은 강도 소리에 일어나 덜덜 떨며 자는 척하고 있었다며, 진짜 잔 나를 어이없어했다.




극한 상황에 성격이 드러난다고...

우리 아빠는 강한 척하는 겁쟁이였고, 누가봐도 천상 여자인 우리 엄마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는 정말 잠귀 어둡고, 천하태평의 숙면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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