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겪지 못할 경험들
지나가는 새가 똥을 싸면 내가 맞았고
내가 버스 제일 뒷좌석에 앉으면 차가 뒤로 밀렸다.
이 이상하고 절묘한 타이밍들은
항상 나를 찾아와 나를 당혹게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살이 쪘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진 저체중이었고, 고학년이 되면서 간신히 정상 체중이 되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 일 년에 10kg씩 살이 찌기 시작했다.
엄마는 밥 잘 먹으면 키가 큰다며 끼니마다 밥을 두 그릇씩 먹는 나를 좋아했다. 나는 그런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늘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그런데 엄마의 말처럼 키는 크지 않고 살만 쪘다.
지금도 남보다 큰 덩치를 볼 때마다 애꿎게 엄마를 원망한다.
"그때 엄마가 밥 많이 먹으면 키 큰단 말만 안 했어도 내가 그렇게 많이 안 먹었을 건데..."
한참 덩치를 키우고 있을 무렵,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위해 제일 뒷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오르막 길을 오르던 버스가 뒤로 살짝 밀리더니 갑자기 시동이 꺼져버렸다. 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놀라 소리를 질렀다.
"어... 어... 어... 이 차가 왜 이래?"
차가 뒤로 밀리자 앞에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버스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이 버스 제일 뒷좌석 한가운데 앉은 내게 쏠렸고, 난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괜히 쭈뼛거렸다.
"아현아! 니가 무거워서 그런 거 아니가?"
"야!!!:
소리를 쳤지만, 정말 내가 무거워서 차가 밀리는 건지 신경이 쓰였다. 부끄러웠지만, 부끄럽지 않은 척하며 앞자리로 살 걸어 나갔다.
"아저씨! 차 고장 났어요?"
하고 묻는데, 버스가 움직였다.
'아! 뭐야! 하필 왜 지금 차가 움직이는 거야.'
절묘한 타이밍으로 버스는 정말 나 때문에 멈췄다가 움직이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친구들은 뒷좌석에서 깔깔거리며 웃었고, 다음 날 학교에는 내가 오르막길 오르던 버스를 세웠다고 소문이 파다했다.
고등학교 때 엄마가 우리 형편에 안 맞는 코트를 백화점에서 사줬다. 30여 년 전 30만 원 가까이 주고 산 코트는 내 생애 가장 고급스러운 옷이었다. 겨울 내 그 코트만 입었고, 입고 나면 눈에 잘 보이는 벽에 걸어두며 소중하게 다뤘다.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11시가 다 된 늦은 시각에 친구와 버스를 탔다. 늦은 시각인데도 공부하고 온 학생들,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 술 한잔 거하게 들이켠 아저씨들로 버스는 만원이었다.
앉을자리가 없어 문 입구 쪽 손잡이를 잡고 서서 친구와 수다를 떠는데 뒤에서 심한 술냄새가 났다.
'아! 하필 술 취한 아저씨가 뒤에 섰네.'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꽉 차 있어 쉽지 않았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서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윽... 윽.... 윽... 우웩!"
"으악!!!!!!!!!!!!!"
뒤에 있던 아저씨는 내 머리부터 어깨까지 술과 함께 먹은 안주를 토해내 버렸다. 갑자기 일어난 일인 데다 너무 더럽고 놀라 아저씨에게 화 낼 생각도 못했다..
"어! 학생 미안해. 아이구... 미안해."
그러더니 아저씨는 다음 정류소에서 내려버리는 게 아닌가! 내 온몸에 구토를 한 당사자는 사라져 버렸고, 난 혼자 냄새나는 오물을 뒤집어쓴 채 세 코스를 더 가야 했다. 버스 속 사람들은 코를 막고 나를 슬금슬금 피했고, 내 옆에 있던 친구들도 피했다.
'이게 뭐야. 왜 나만...'
눈물이 나려 했다. 태어나서 처음 산 비싼 코트는 더는 입고 싶지 않은 코트가 되어 버렸다.
다음 날 역시 학교에는 내가 버스에서 온몸으로 구토를 받은 이야기가 돌았고, 친구들은 알면서도 상황을 묻고 또 물으며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랬다. 소풍 갔을 때 새가 똥을 싸도 내 팔에 떨어졌고, 지나가는 아저씨가 아줌마를 부르며 몇 시냐며 시각을 물을 때도 중학생이었던 내 어깨를 쳤다.
친구들에게 그런 모든 일은 개그보다 더 한 즐거움이었고, 난 기분이 나쁘면서도 친구들이 웃으니 따라 웃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나한테만 생겼던 그런 일이 어이없지만, 모두가 즐거웠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