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한창이다. 노란 소국이 화분 가득 담겨 있는가 하면, 한 송이가 추구공 만큼이나 큰 개량 국화도 요즘은 흔하다. 색깔도 예전에는 노랑 국화 일색이었던 반면, 요즘은 분홍, 보라, 푸른 빛을 띠는 국화까지 다채롭다. 세상이 달라진 모습이나 꽃 종류가 다양해진 변화는 그 속도가 비슷하다. 오늘처럼 국화 향이 나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다. 어디서든 예쁜 꽃을 보면 탐을 내셨다. 내가 너댓 살 무렵. 걸망개가 아직 간척지가 되기 전이다. 해질녘 찬바람이 싸늘하게 부는 갯가에는 야트막한 산자락 외길을 따라 오르는 중턱에 서향으로 앉은 초가집이 한 채 있었다. 대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그 사이사이로는 국화가 가득했다. 어디서 가져오는지 그 집에는 새로운 꽃들이 수시로 들어서곤 했다. 그날은 붉은 자줏빛 국화가 새롭게 피어 있었다.
노란 국화는 이미 집에 있으므로 처음 보는 이색 국화에 엄마 마음이 꽂혔다. 자줏빛 키다리 국화는 그 시절에 귀한 종류였고 나와 엄마도 거기서 처음 봤다. 몰래 한 뿌리 캐려다가 주인장한테 들켰다. 붙임성 좋은 엄마는 갑자기 태도를 반듯하게 고치며 한 포기만 줄 것을 부탁했다.
꽃 키우는 데 애살스럽고 타인에게 까칠한 주인장이 거절할 줄 알았는데 흔쾌히 몇 포기를 담아주었다. 귀한 꽃을 객지에서 줄곧 구해오곤 하던 외팔이 아저씨는 꽃을 아끼고 나눠주는 인심은 박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엄마한테는 얼굴살 하나 찌푸리지도 않고 선뜻 내어 주었다. 한 포기만 주어도 괜찮을텐데 몇 포기 더 얹어서 주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소문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특히나 엄마를 대하는 행동은 곱상했다. 아픔이 있고 삶이 힘겨운 사람끼리는 서로를 알아보는 눈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빠알간 다알리아도 그 집에서 왔다. 이름도 생소하고 이국적인 ‘다알리아’다. ‘다알리아’가 무슨 뜻이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궁금하면 절대 참지 못하던 어린 나였기에 그때도 꽃이름 하나로 엄마한테 대답이 나올 때까지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 답이 궁해 난감해하던 엄마의 그 표정도 동심처럼 아릿하다. 흰 두건을 머리에 쓴 엄마는 그냥 꽃이름이라며 마침표를 땅땅 찍고 말았다.
엄마의 꽃 애호는 도시로 이사 와서도 계속되었다. 화단에는 향나무와 개나리, 작약이 계절을 알리고, 화분으로는 관음죽과 팔손이가 마루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허전했을까. 어느 날, 시멘트 블록 장독대 위에는 연분홍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공작선인장이 올라섰다. 긴 치마 곱게 차려입고 나들이 가고픈 엄마 마음을 담았을까. 그냥 눈요기만으로도 미소짓는 순간을 즐기고 싶었을까. 공작이 온 그날은 혼례를 치르는 잔칫집 같았다.
그렇게 대문을 마주한 장독대와 시멘트 축담에는 꽃 식구가 하나둘 늘어났다. 장독대 난간 위에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제라늄도 자리를 잡았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선홍색 꽃을 쉬지 않고 피워댔다. 냄새나는 그 꽃이 나는 싫었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엄마는 제라늄을 좋아했다. 꽃은 자고로 예쁘고 향기로워야 하는데 거북스런 냄새를 풍기다니. 나는 꽃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계절 따라 엄마가 이 땅에서 생애 마지막 날까지 키운 꽃도 제라늄이다. 늘상 키우던 선홍색은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추고 연분홍 제라늄만 남아 있었다. 빨강이 지겨워 새로운 연분홍이 예뻤으리라. 쉬지 않고 끊임없이 꽃대를 올리는 녀석이 기특하였으리라. 날 좀 보라는 듯이 대문 앞 사람 눈높이에 맞춰 앉아 있었다.
제라늄 이후로도 사위가 선물한 긴기아난이 엄마와 인연이 길었다. 남미 가파른 절벽이나 바위틈에서도 살아남는 강한 생명력이 이국땅 한국 주택가에서도 오래도록 명을 누리고 자손을 번창시켰다. 늦가을 힘이 없어지면 노란 영양제를 꽂아두기도 하고 꽃피기 전 이른 봄에는 솜이불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새 흙으로 분갈이도 했다. 새순이 돋고 가짓대가 넘치면 이웃집으로 분가를 시켰던 녀석이다. 엄마 생일에 맞춘 사위 선물인지라 쏟는 애정이 남달랐다.
새로이 마음을 붙인 화초로는 목베고니아다. 제라늄과 잎이 넓은 베고니아가 제법 큰 화분에 같이 담겼다. 장마가 지루하게 길던 그해 여름, 처음 보는 목베고니아는 탐스런 꽃송이로 실바람에 하늘거리며 엄마 표정을 지었다. 탐스러운 엄마 미소로, 정갈한 소녀 빛깔로 하늘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들을 수가 없다. 골목을 훑고 지나는 바람에도, 장마 비바람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건네는데 알 수가 없다.
한동안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꽃을 그렸다.
"이번에도 꽃이에요?"
"지겹지도 않아요?"
장미, 백합, 패랭이, 제라늄, 창포... 꽃만 그렸다. 그려도 그려도 그려야 할 꽃이 줄을 서 있다. 나는 왜 꽃만 그릴까? 엄마는 왜 그토록 꽃을 좋아했을까?
그러고 보니 엄마가 가시기 전 마지막 늦가을에도 화분을 새로 하나 만드셨다. 게발선인장이다. 엄마는 게발선인장 키우는 솜씨가 탁월하다. 선인장 가지가 일반 나뭇가지처럼 길게 늘어지도록 키우는가 하면, 촘촘하고 풍성하게도 잘 키웠다. 찬바람이 시원하게 냉기를 머금은 계절이 되면 가지 끝마다 분홍 봉오리를 맺었다. 개화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연말이나 크리스마스다. 집에 방문하는 이마다 감탄을 쏟아낸다.
“와, 어쩜 게발선인장을 이렇게 잘 키울 수가 있어요?”
“별거 없구만. 가끔 쌀뜨물을 한 컵씩 주면 되네.”
잘 키웠다는 칭찬에 으쓱하면서도 별거 아닌 그 비법을 공개하면서 꽃처럼 따뜻한 당신의 손길도 한몫한다는 듯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셨다.
새로 만든 화분은 우리 아파트에 갖다 놓으셨다. 겨울에는 찬바람을 피해 베란다에서 거실로 옮겼다. 그전에도 몇 번이나 키우기를 시도해 봤으나 번번이 실패했던 그 녀석이 이번에는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성탄 무렵 우리 집에도, 나의 거실에도 연분홍 게발선인장 꽃봉오리가 맺혔다. 첫 꽃이 갓난아기처럼 보드랍고 환하게 피어올랐다. 꽃에도 애기솜털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아이구나. 됐다. 됐어. 인자 됐다!!”
를 연발하시며 반가워하고 기뻐하셨다. 그 뒤에 직접 와서 보시고는 손뼉까지 치면서 웃음살을 지으시며 첫 꽃을 반기셨다. 지나고 보니, 뭐가 그렇게 됐다는 것이었는지, 게발선인장 키우기에 성공한 것이 왜 그토록 반가우셨는지 궁금하다.
엄마가 가신 그해 크리스마스는 특별했다. 앞날 성탄 이브에 개화하기 시작한 꽃봉오리가 뒷날 성탄절에 만개했다. 화분 전체 가지 끝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가지가 늘어졌다. 겨울 난방 훈훈한 기운에 맞춰 시시각각 피어나는 꽃잎은 천상의 선녀가 내려와 날개짓하는 듯, 부채춤을 추는 듯했다. 벌어진 꽃심에서는 수술이 하얗게 허공으로 뻗쳐올라 나팔을 불며 꽃잔치가 열렸다. 그날 황홀하면서도 기이한 기억은 생각날 때마다 늘 또렷해진다.
평생 꽃을 좋아했던 엄마다. 자식처럼 키우고 가꾸며 그 자라나는 기쁨을 즐기셨다. 그러면서 당신의 삶도 꽃과 같은 아름다운 여정이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돌보는 삶은 그렇다. 나보다 타인을 살피거나 베풀 때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엄마 삶이 늘 그랬다. 국화처럼 향기롭고 공작선인장처럼 우아하게, 게발선인장처럼 끈질기고 베고니아처럼 탐스럽게. 엄마 삶이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