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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일지> 유독 일하기 싫은 날

by 김잼

일은 기본값이 하기 싫다이다. 항상 하기 싫지만 그중 유독 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날이 오늘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일하기 싫다. 일 자체가 하기 싫다기보다는 일을 하러 의자에 앉고 몸과 머리를 쓰며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해야 하는 행위가 싫은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일하기 싫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 하기 싫어 오늘은 산책을 길게 했다. 산책할 때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눈을 감았다. 이 시간은 산책 시간이니 합법적으로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계속 이렇게 서 있고만 싶다는 생각을 했다.

토리에게는 먹고 자고 싸고 세 가지만 하면 되는데 인간은 왜 이렇게 하는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벤치 밑에 노란 민들레가 활짝 폈다. 이 꽃도 제 본분을 다해 그늘에서도 활짝 얼굴을 들이미는데 나도 내 본분을 다해 일해야지. 노란 민들레가 핀 자리에서 열 발자국도 안 돼 노란 개나리들이 풍성 풍성 폈다. 짙은 진달래 분홍빛이 바싹 말라비틀어진 산을 물들였다. 위로는 하얀 벚꽃들이 질세라 폈다. 사철나무가 많은 산길이라 짙은 녹색만 보다가 연한 새순들이 건방지게 피고 있었다. 너도 나도 서로 피겠다고 난리다.

나보고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서 일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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