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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일지> 겁쟁이

by 김잼


토리는 겁쟁이다. 놀리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겁쟁이다.

무슨 소리만 나면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간다. 오늘도 산책하면서 냄새를 맡다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화들짝 놀라 나자빠졌다. 불우했던 과거 탓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예민하고 겁이 많은 기질은 타고났다. 나는 토리만큼 겁이 많은 강아지를 보지 못했다.

예전에 내가 눈길에 미끄러진 적이 있다. 아무도 없어서 창피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아팠다. 그런데 토리는 내가 미끄러져 걱정하기는커녕 자기한테 피해가 올까 봐 도망가기 바빴다. 나는 산책할 때 줄을 허리에 묶고 한 손으로 줄을 잡고 간다. 미끄러져 손에 잡고 있던 줄을 놓쳐버렸고 허리 줄이 팽팽해진 채 나 살려다오 하며 헛발질을 했다. 어떤 강아지는 주인 찾아 삼만리를 가고 어떤 개는 몸에 물을 묻혀 불 속 주인을 구하기도 한다는데 어찌 된 게 진돗개의 피가 흐르는 토리는 이토록 겁이 많고 얍삽하단 말인가. 충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토리는 내가 물에 빠져도 자기 살겠다고 나 버리고 도망가고도 남는다.

겁먹은 토리를 보고 있자면 약간 나의 모습도 보인다. 실체를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 때문에 불안해하고 겁먹은 순간의 나를 보고 있는 듯해서 약간 짠하기도 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강아지라는 전형적인 이미지에 조금 속은 것 같아 괘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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