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많이 듣고, 좋은 질문을 하셔요.

by michaela

학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나에겐 건방진 면이 있었다.

사범대학을 나왔고, 교육학을 복수전공을 했고, 학원이나 과외경험뿐 아니라 학교에서의 근무경력도 5년이나 있으니 내가 교육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했다.

그래서 나의 협소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이나 부모님을 가르치려 들었다.


그런 나에게 원장님은

"아이들이나 학부모님과 상담하실 때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좋은 질문을 해 주셔요."

하곤 말씀하셨다.


처음 2년 정도는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도 않고 동일한 워딩만 반복하며 나를 질책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 '그래서 어쩌라고요!!!'를 여러 번 외쳤다.


이후로 3년을 더 근무하며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좋은 질문을 하려면 내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입시과정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내게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부모님께서 불안한 마음에

“아니, 요즘은 정시비중이 높아졌다는데…”

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쏟아놓으면, 듣고 있다가

“예. 맞는 말씀이셔요. 그런데, OO이는 이런저런 이유로 수시로 지원하는 게 더 유리해요.”

안내드릴 수 있게 되었다.


사춘기 아이들의 감정에 대해 설명하는 책을 읽고 나니 아이들의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도 훨씬 수월해졌다.

‘뇌과학이 연구되기 전에, 특히 청소년기에 전두엽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연구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많은 어른들이 오해를 했습니다. 체격이 크고 성숙해 보이는 청소년은 판단도 어른만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청소년들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사춘기의 의도적인 사악함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 최성애, 조벽 <청소년 감정코칭>’

책을 읽고 난 후,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고 학습실에 들어가서 공부하라는 핀잔 대신

“정말?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라며 맞장구를 칠 수 있게 되었다.


각 교과목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공부방법을 구체적으로 안내할 수 있게 되자, 책상 위에 엎어지며 짜증스럽게 내뱉는 아이들의 말을 듣는 힘이 생겼다.

전에는 아이가

“하나도 모르겠어요.”

답답해하면, 나까지 그 감정에 휩싸여 짜증스러운 감정이 증폭되었다.

그런데

“당연하지, 네가 지금 공부하는 부분이 얼마나 어려운 부분인데.. 인강으로 이 부분을 먼저 들어보자.”

구체적인 제시가 가능해지면서 나에게도 한층 여유가 생겼다.


부모님들의 조바심과 수고스러움에 대해 공감이 되니, 가르치려 들기 전에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OO이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요즘 OO이 방을 보면 돼지우리가 따로 없어요.”

한숨을 쉬시는 부모님께

‘정리정돈은 뇌의 전두엽이라는 영역과 관련된 건데요…’ 라며 책에서 읽은 내용을 읊기보다

“시간관리하는 것도 그렇고, 정리정돈하는 것도 그렇고.. 이 시기의 아이들 대부분이 어려워한다고 하니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매일 지켜보시는 게 많이 힘드시죠.”

하며 이야기를 먼저 듣는다.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아이들이나 학부모님의 이야기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에 대한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의 평판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했는데, 아이가 잘 따라주지 않는다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느라 들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하고, 모르는 게 있을 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구성원들이 도움을 줄 것이라는 신뢰가 쌓이면서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진심을 이해해 주시고 같이 애써주시는 부모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말 많은 내가 듣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 가는 중이다.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이 모르는 것을 본인도 모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의 모름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책도 읽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이제야 예전보다 조금은 더 들을 수 있게 된 내가 좋은 질문까지 할 수 있게 되려면 또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일단, 출근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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