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크라테스인 줄 알았네..

by michaela

학습매니저로서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아이들을 내 방에 붙들어 놓고

많은 지식을 쏟아붓기에 바빴다.


그런데,

'x의 값에 따라 하나로 결정되는 y의 값을

x에서의 함숫값 f(x)라 한다'는 내용을

열 번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아이 앞에서

부글부글 속 끓이며 깨달았다.


시험 전날,

완벽하게 준비해 줬다고 생각했던 '자음동화' 문제를

완벽하게 틀려온 아이의 시험지를 확인하며 깨달았다.


이해를 필요로 하는 지식은

백신을 접종하듯

주사기로 주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서 내 방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공간이 되었다.


"지난번에 말했던 A랑 B랑, 오늘 저한테 와서 사과했어요."

"어제 게임 레벨 상승해서 오늘은 완전 기분 좋아요."

"우리 아빠 잔소리를 매니저님도 들어보셔야 해요."

"아니, 그 관종 미친 거 아니에요?"

시답잖은 이야기에도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진지하게 맞장구치고

별 것도 아닌 감정들에

같이 탄식하고 기뻐할 줄 아는 어른에 대한 신뢰가 쌓였을 때,


아이들은

하기 싫은 마음을 누르고

하루에 몇 시간씩 앉아서

'주기율표'랑 '영어단어'를 외운다.

'곱셈공식 변형문제'를 앞에 두고

요리조리 궁리하기 시작한다.


단, 어른들이 공부시키기 위해

가짜로 자신들을 이해해 주는 '척' 하면

아이들도 공부를 하는 '척' 한다.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가 늘면서

내가 소크라테스라도 되는 줄 착각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내가 지금 실천하고 있는 거 아냐?’


건방진 마음으로 대학 때 공부하던 교재를 펼쳤다.

현대 교육 이론에 대한 공헌 중, 이론적으로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것은 그(소크라테스)의 교수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으로 무지(無知)를 자각하게 하는 반어법(상대방의 틀린 점을 깨우치기 위하여 반대에 도달하는 질문을 하여 진리를 이끄는 변증법)과 그 자각으로부터 진리를 파악하게 하는 과정인 산파술이 그의 유명한 변증법인 동시에 교육방법으로서의 문답법(Dialectic Method)이다.

1) 학생으로 하여금 가르치고자 하는 덕이나 진리의 중요성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설득하고,
2) 그와 관련하여 변증법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검토케 하며,
3) 의식되지 못했던 자기의 무지를 시인하게 하고,
4) 그곳에서 출발하여 변증법적으로 진리에로 이끄는 과정이다.
- 한명희, 서양교육사 신론

실천은커녕,

내가 이걸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런데

시험을 준비한다고 밑줄 그으며 달달 외웠던 내용보다

20년 전에는 흘려버렸던 아랫 문단이

가슴에 더 큰 파장을 일으킨다.


이러한 대화술은 기계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오늘날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보아도 바람직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은 학생에 대한 진정한 애정과 관심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표본을 보인 점도 교수에 있어서 교사의 태도와 교수내용이 분리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한명희, 서양교육사 신론


아이들에게 진리를 발견하게 하는 산파는 못 되더라도

일단, 애정과 관심을 기울이는 어른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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