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들은
자아정체감을 형성하면서
심리적 불안을 경험한다.
그 와중에 가정, 학교, 사회에서는
경쟁적인 학업성취를 요구받는다.
그러니
중학교 2학년.
처음으로 치른 학교 시험에서
자신이 받은 점수에 화들짝 놀라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온 K가
다섯 달이 넘도록
매일 3시간 이상을 공부해서
풀어온 시험지를 받았을 때,
나는 우선
“고생 많이 했어. 잘했어.”
라고 해야 했다.
게임하느라 자신에게 소홀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날,
아빠, 엄마, 선생님, 매니저, 심지어 문제집까지..
다 이상하고 마음에 안 든다는 투정을 부리면서도
삼각형 내심 문제를 붙잡고 씨름했던 K가
응용력이 모자라서
시험 시간에는 공부한 게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더라며
50점 시험지를 내밀었을 때,
나는 우선
“잘했어. 열심히 했어.”
진심으로 말해야 했다.
그러나
속상해하며 내 눈치까지 보는 K를 앞에 두고도
답답하고 아쉬운 내 감정과
부모님께서 다음 달에는
아이를 보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앞서자
“괜찮아. 열심히 했잖아..”
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최선을 다한 아이들에게
잘못됐다는 무언의 메시지까지 담아
‘괜찮다’고 하는 대신,
진심으로 ‘잘했다’고 말하는
어른이고 싶다.
한 엄마가 말했어요. “원장님, 얘 큰일 났어요. 공부를 너무 못해요.” 제가 물었지요. “아이가 나쁜 짓을 하나요?” 엄마는 눈이 동그래지면서 대답했어요. “아니요.” 저는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아이가 학교는 잘 갑니까?” 엄마는 “네”라고 대답했어요. “아이가 급식도 잘 먹고 아이들이랑 잘 어울리나요?” 엄마는 다시 “네”라고 대답했어요. “선생님이 아이에 대해서 뭐라고 하세요?” 엄마는 조금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얘는 친구들하고 잘 어울린대요.” 저는 또 물었습니다. “아이가 학원을 빠지지 않고 잘 다니나요?” 엄마는 “네”라고 대답했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공부를 잘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그래요. ‘잘’을 잘못 해석하면 육아가 무척 힘들어요. 아이가 골고루 먹어야, 키가 커야, 성적이 좋아야, 좋은 대학에 가야 잘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마음이 편안한 아이로 키우는 거예요. 꼭 ‘잘’ 해야만 할까요? 꼭 그래야만 한다면 어디 부담스러워서 세상으로 나올 수나 있을까요? 결혼도 부담스럽고, 부모가 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해도 괜찮고, ‘좀’ 해도 괜찮아요. 결국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 오은영, <화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