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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불꽃 소예
Oct 05. 2023
차분히 지켜본다.
불안과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할 때까지 말이다.
어제는 오랜 연휴가 끝나고 난 뒤 회사로 돌아가는 부산한 한 주의 시작이었다. 메일함에 쌓인 이메일들을 정리하고, 긴 연휴 증후군으로부터 깨어 나와 회사모드에 적응하기 위해 커피를 연신 마셔대었다. 그럼에도 정신이 회사모드에 적응하지 못해서 어질 한 하루였다. 게다가 지난 분기 내가 실수했던 전표까지 발견되고, 남편 역시 그다지 컨디션이 밝아 보이지 않아 또 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다.
아 내 마음의 불안이라는 친구가 찾아왔구나, 내 마음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처럼 일렁였다. 아이에게도 말했다. 엄마가 지금 기운이 없고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라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순간적으로 짜증을 내면 그것이 아이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일부러 말을 해주었다.
불안과 우울이라는 친구는 이따금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잠을 달아내고 하염없이 유튜브를 보게 만든다. 억지웃음을 지어보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와 같은 호오포노포노도 한번 말해보고 또 마당에 나가서 개도 한번 쓰담하고 향도 피워보고 어지러운 내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에그하르트 톨레의 책도 읽고 있지만, 그 구절의 의미가 모두 바람에 흩날리듯 내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런 순간들이 찾아온다. '왜 난 이렇게 불행한 가라'는 자기 연민적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이, 그런 생각 자체가 내가 아니라고 이게 전부는 아니라고 거듭 이성의 끈으로 나에게 말해봤다.
에크하르트 책에서 그런 고통과 마주하며 지켜보라고 말한다. 모든 고통이 환상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한가? 무엇이 나를 이토록 슬프고 절망적이게 만드는가...
아마도 나는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있는 거 같다. 화려한 싱글들도 주위에 많고, 혼자서 아이를 잘 키워내는 싱글맘, 싱글부도 많지만 나는 어쩌면 그런 미래가 다가올까 무서운 거다. 혹시 남이 혼자가 된 나를 무시하면, 아이가 잘크지 못하면 어쩌나? 이런저런 그런 말도 안 되는 피해망상적 생각들... 그래서 지켜봤다. 그 불안들을 하나씩... 억지로 누르지 않고 지켜보려고 한다. 그 두려움, 공포들을 가만히 지켜보려고 한다.
그것이 정녕 나를 죽일 정도의 공포일까? 내가 생을 마감할 정도의 공포와 두려움이었을까 하고 말이다. 가만히 가만히 지켜보려고 한다. 아마도 답을 얻을 것이다. 그 공포, 두려움 앞에 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 실체에 대해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그 정도로 힘들어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만약 어떠한 순간도, 어떤 것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혹은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때론 부서질지언정 누런 이를 드러내며 쨍하게 반짝이는 파도를 서핑하며 웃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책들에서 말하듯 조금은 '나'라는 상에서 내려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상' - 내가 생각하는 어떤 가족상, 내가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삶, 내 이고(ego)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고통을 당당히 마주 보지 않는다면, 고통을 향해 의식의 빛을 비추지 않는다면 업장은 계속해서 다시 살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어떤 영적 가르침들은 모든 고통이 궁극적으로 환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말이 진리입니다. 중략 업장은 우리가 그것을 직접 관찰하면서 '있는 그대로' 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관찰하고, 우리 안의 에너지 장을 느끼고,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업장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했던 의식은 깨지게 됩니다. 더 높은 차원의 의식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현존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것은 빛을 받으면 드러나고, 빛을 받아 드러난 것은 빛의 세계에 속하게 된다.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지켜본다는 것은 그 순간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면의 공간을 빈틈없이 수호하십시오. 업장을 직접 지켜보면서 그 에너지를 느끼십시오.
===금강경 마음공부===
두려워하는 것은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바라는 것은 얻고 싶기 때문이다.
얻기 전에는 얻길 바라고,
얻고 나면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기대와 두려움이 만든 환상과 용감히 마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