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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불꽃 소예
Apr 23. 2024
내 삶에 스며든다
아주 작은 것이 만들어 내는 평화와 평온
나는 아침이 되면 따뜻한 물 한잔을 들이키고선 커피를 내린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 우리 집 산 밑 공기를 내 폐부에 가득 채운다. 그러면 신선한 산공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그다음엔 우리 집 개에게 밥 한 그릇 퍼주고 쓰담해 준다. 아침의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나는 나를 치유한다. 물론 그럼에도 때때로 견디기 힘든 고통의 날들도 있긴 하다. 그래도 슬리퍼를 끌고 나서면 바로 이렇게 신선한 공기를 내 몸속으로 들일킬 수 있는 곳에 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축복이다. 그리고 멋진 하늘을 바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하다. 하늘의 구름과 별을 보며 이야기할 때가 있다. 아직 신이 나를 버리진 않으셨겠지? 저를 보고 계신가요? 뭐 이런 감성에 취해 혼자 중얼거려보기도 한다.
나 같이 가진 재산도, 특별한 재주도 없는 사람에게 신이 내려주신 작은 축복은 아마도 아직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시력도 아직은 꽤 괜찮다는 점, 그리고 도서관은 근처에 없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책 정도는 사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점 역시 하늘이 내게 주신 축복이라 여긴다. 가끔은 이 모든 것들이 내게 주어진 기적과 같은 선물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약간오버하자면 말이다. 예전에 회사의 한 무례했던 아저씨가 술을 마시지 않는 나에게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냐고 왜 그렇게 재미없게 사냐고 핀잔을 준 적 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몽롱한 상태가 되지 않아도 소소하게 삶의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고 브런치나, 책에서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그래서 신께서 내게 아직까지 엄청난 재능과 부, 건강한 남편을 남겨주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삶이 고되게 느껴지더라도 잠시 밖으로 나가 하늘 한번 쳐다보고 책 읽으며 그냥저냥 또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삶이 고되게 느껴질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건 이런 작은 것들이다.
지난번 어느 브런치 작가의 글을 읽다 급 떠나게 된 통영에서 잊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노을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무식하게 가지치기를 한 포도나무에서 새 잎이 돋아 나는 것을 보고, 퇴근길에 우리 회사 길고양이들이 내 차 위에서 밥 달라고 배를 까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참 오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이런 작은 기억, 풍경들이 내 인생을 구성하고 나를 치유하고 내게 힘을 주리라 믿는다.
그 어떤 것도 아무렇게나 내게로 오지 않았으리라. 인드라망 모든 인과 연이라는 씨실과 날실이 서로 얽혀 내게 주어졌으리라 그리 생각한다. 그러니 아직까진 내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고 포기하고 그러지 말아야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방금 발견해 낸 것처럼 분명 신이 내게 주신 그런 작은 축복 같은 것이 더 있을 거라 생각된다. 그러니, 일단은 그런 작은 것들을 발견하고 감사해하다 보면, 그것이 쌓여 내 인생을 좀 더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작은 좋은 것들이 내게 스며들어, 나를 좀 더 좋은 곳/인연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아니 이미 도착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