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뿐이다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점심시간,
나는 어김없이 산택을 나선다.
따뜻한 햇빛 샤워를 받으며 걷다 보면, '사는 게 별거 아닌데, 왜 그렇게 심각했을까' 하는 반성이 절로 든다. 그리고 깨닫는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참 행복하다는 것을.
어젯밤, 남편의 푸념을 잠자코 들어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하는 연민이 밀려왔다. 무엇을 더 해보라고 채찍질하기보다는 그저 그의 감정을 다 들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몇 년째 반복되는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지켜보며 나 역시 지쳐갈 때가 많았다.
'과연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답 없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문득, 이 모든 것이 결국 찰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다.
우리 집 감나무를 바라보면 그 생각이 더 확실해진다.
파릇파릇 새 잎이 돋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주렁주렁 달린 홍시와 함께
잎사귀는 모두 떨어지고 있다. 어느새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감나무가 계절에 따라 변하듯, 사람의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영원할 것 같던 불행도 사실은 '불행하다'는 생각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변한다.
이 단순한 진리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면, 고통조차도 한 순간임을 알게 된다.
결국, 나에게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그 순간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만이 중요하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신비와 경외로 바라보자.
삶은 그저 충만히 살아가는 것이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 법정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