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진 기행의 수면제를 꿈꾸며
일요일 밤.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남편은 항암 부작용으로 하루 종일 방 안에 갇혀 괴로워했고, 아이 역시 엄마를 더 붙잡고 싶어 칭얼댔다.
"엄마 내일 출장 가야 해."
말은 했지만, 나도 그 말에 마음이 아렸다. 아이보다 내가 더 의지하고 싶었던 밤이었으니까.
잠들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나는 또다시 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언가 쓰지 않으면 나 자신이 너무 혼란스러워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짐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노트
그 안에는 오래전 필사해 둔 문장이 적혀 있었다.
'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이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 김승옥, 무진기행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숨고 싶었다.
그 수면제를 지금 당장 먹고 조용히 잠들고 싶었다. 말없이 잠드는 것, 아무 말도 없는 밤,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
나약해지면 안 된다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나를 스스로 채근하지만, 오늘 밤 만큼은 그냥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상상해봤다.
나는 지금 무진으로 향하는 낡은 버스 안이다.
창문을 살짝 열고, 짭조름한 바다내음을 머금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햇살은 따뜻하고, 공기는 적당히 서늘하다.
나는 눈을 감고 상상한다.
이 모든 요소가 수면제처럼 내 마음을 감싸주기를.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픔은 여전히 곁에 있고, 피로는 쌓여만 간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필요한 건 잠시의 숨, 마음을 감싸주는 보이지 않는 수면제일지도 모른다.
햇살, 바람, 그리고 소금기 섞인 공기처럼, 아주 작은 상상이 우리를 회복으로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