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초안과 선택
모든 것은 일순간에 닥쳐왔다. 난생처음, 준비도 없이. 마치 리허설 한 번 없이 무대에 올라선 배우처럼.
그렇다면 만약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곧 인생 그 자체라면, 삶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까?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말했다.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밑그림'이라는 말도 어딘가 어색하다. 밑그림은 언제나 완성작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엔 완성작이란 없다. 그저 무용한 초안일 뿐이다.
신혼 초,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에 빠지곤 했다. 20대로 돌아가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픈 걸 알았을 때 헤어졌더라면,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상상조차도 부질없다는 걸 안다.
후회는 바람, 스쳐가도록 내버려 두자.
내 인생은 내 선택의 총합, 그 모든 흔적이 나를 그렸다.
병원 복도에서 만난 그녀도 말했다. "내 선택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
어제, 흐린 하늘 아래 시아버님의 코로나 소식을 들었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졌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란다. 남편은 항암 일정 소식을 전했다. 고통은 짙은 안개처럼 밀려와 숨을 막았다.
게다가 이제 막 들어간 회사의 마감이 코 앞이었다. 나는 친정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울음을 터뜨렸다.
나 혼자 어떻게 이 모든 걸 감당할까, 아빠는 내게 말했다. "넌 엄마야. 마음 단단히 먹어." 그 말은 따뜻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오늘 아침, 봄바람이 불었다. 햇살은 어제보다 따스했다. 흐린 날과 맑은 날, 삶은 날씨처럼 변했다.
그 모든 순간이 내 것이다. 고단한 선택에도, 반짝이는 순간이 있었다. 병실에서 웃던 그녀의 미소, 햇살 속 아이의 손.
삶은 미완의 스케치. 하지만 그 선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내 선택은 고단했지만, 그 안에 빛이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속 싱클레어처럼, 나는 묻는다.
"삶은 어렵기만 했던가? 아름답지 않았던가?
"태어나는 일은 언제나 어려워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얼마나 씨름하는지를 싱클레어도 알 거예요. 자신의 지난날을 되짚어 보세요. 정말로 길이 그토록 어려웠던가요? 오로지 어렵기만 했던가요? 혹시 아름답지는 않았던가요? 싱클레어가 그보다 더 아름답고 쉬운 길을 갈 수 있었을까요?" - 데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