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구리 Jul 24. 2022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살곤 해

[별]


 부득이하게 도시에서 태어났고 도시에서 평생을 자라 온 나에게 별이란 것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할 따름이다._사실은 거대한 수소 덩어리가 스스로를 태워 빛을 발하는 것일 뿐이지만, 새카만 밤하늘에 점점이 박혀 있는 별들을 바라보는 일이 흥미롭지 않다고, 그것이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_


 말 그대로 별들이 우수수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본 기억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그 찰나의 시간이 오롯이 기억 회로에 남아 있기도 하다. 그때의 온도 내지 습도,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즐거웠었던 것 같다. 또 뭔가 내 안에 설명하지 못하는 무언가로 인해 깊은 울림이 전달되었 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보아온 중에 가장 깨끗한 하늘에 자리를 하고 있는 네팔의 별들을 올려다보고 있자 하니 어쩐지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옥상에서 별을 바라보던 우리들

 첫 번째 떠오른 기억은 이러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천지 구분을 하지 못하고 열심히 놀고 난 후 나는 무엇하나 알지 못하면서 이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과학탐구과목들 중에서 지구과학을 제일 좋아했다. _이때를 생각해보면, 무식이 용기라는 말이 참으로 맞는 말이다. 사실 난 숫자 앞에서 나약했으면, 어떠한 현상의 원인과 결과를 탐구하는 것 자체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허구의 아름다운 세상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내가 좋아했던 영어 선생님이 프랑스 사람들은 말하는 게 참 예쁟더라. 하는 말에 다른 반 친구에게 불어 교과서를 빌려 읽던 아이였다._


  사실은 지구과학이라는 교과목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우리 학교에 부임했던 그 젊은 선생님과 합이 잘 맞았다고 하는 게 맞겠지. 이제와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그 젊은 지구과학 선생님은 우리의 놀림에 쉽게 얼굴을 붉히던, 수업 종료 종이 울리면 후다닥 교실을 빠져나가곤 했다. 지금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infj 같은 그는 어느 날 '과함 탐구반'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고, 별자리를 보러 캠프까지 떠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침에는 언덕 깨에 있는 천문대를 구경 갔다. 별자리가 동서남북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려져 있는 천장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는 느지막이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늦은 여름, 가을의 초입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은 어깨에 마치 슈퍼맨 망토처럼 두른 무릎담요로 막아 보았다. 서울에서는 지천에 널려있는 그 흔한 가로등도 없는 그곳을 여러 개의 손전등 불빛과 수다로 한참을 올랐다. 그리곤 각자가 원하는 곳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누웠다.


 그리곤 모두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손전등을 껐다. 낯선 어둠이 담요 안쪽으로 밀려 들어왔다. 옆에 있는 친구의 팔에 내 팔을 조금 더 밀어 넣어 팔짱을 껴 보았다.

 고요한 어두움에 서서히 녹아들 때쯤, '우와~' 하는 탄성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글자 그대로 쏟아질 것만 같이 많은 별들이 총총히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밤이슬에 축축함이 등을 적셔오기 시작했지만 자리를 쉬이 벗어날 수 없었다.


 지금에야 즐겁고 행복한 때가 더 많았던 그 시절 우리 주변을 감싸던 괜한 불안과 걱정, 피로감이 잠시 모습을 감춘 순간이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두 번째는 지금 생각해도 갑작스러운 기억이다.

 나랑 둘째 동생이 약간 소원한... 아니 어색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때가 있다. 내가 막 지방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이기도 하고, 동생은 간호사로 삼 교대를 하고 있었던 터라 그동안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그때 한참 지방의 이곳저곳 산을 가는 것이 취미였는데, 어느 날 둘째가 문득 본인도 산을 같이 가겠다고 했다.


 등산화도 등산복도 등산가방도 없는 그녀와 그날 밤,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민둥산행 열차를 탔다. _기차 시간도 제대로 알지 못해 전철에서 뛰쳐 내려 겨우겨우 열차를 탈 수 있었다._ 민둥산에 도착하여 아무도 없는 역사 안에서 아무 말 없이 예능을 보다가 산행을 시작했다.


 평일 밤, 아니 새벽 일출 산행이었기 때문에 등산로에는 사람, 아니 짐승들 조차 없었다. 우리의 발소리, 숨소리만이 가득하니 두려움과 무서움이 스멀스멀 온몸에 닭살처럼 돋아 났다. 그때 갑자기 "언니 고라니는 어떻게 우는지 알아?"라고 동생이 물어왔다. "응? 갑자기 고라니?" 어느 시트콤에서 고라니 우는 소리를 난생처음 들었던 동생이 고라니 울음소리를 흉내 내었고, 우리는 깔깔거리며 이 낯선 산에서 고라니든 멧돼지든 뭐든 만나면 우리는 욕을 하며 도망치기로 했다.

 고라니 울음소리와 함께 도란도란 어둠을 헤쳐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키 높은 나무는 사라지고, 억새 가득한 언덕이 보인다. 그리고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밤하늘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우리의 시간이 잠시 가려져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 가려진 시간은 고라니 울음소리 같은 사소하고, 어이없는 이야기 하나로도 발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휴대폰과 랜턴 불빛에 의지하고, 가져온 담요를 함께 둘러 추위에 덜덜 떨며 새벽 일출을 기다렸던 민둥산
민둥산의 새벽 일출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원하든 원치 않든 치열했던, 또 좌절과 불안함에 힘들었던 내 20대의 마지막 일 년이 시작되었다. 옥상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고 조악한 이 위에서 별을 담아보겠다며 타이머를 맞추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는 이 순간이 오-래-도--록

 앞의 두 기억들처럼 나중에 아주 나중에도 기억될 것 같은 그런 예감.


휴대폰으로 노출시간을 맞추고 여러 번 시도 끝에 찍은 옥상 위 별들

 내가 걸어온 지난날들이 그러했듯, 어떤 날은 생각지도 못한 일에 실망하고 힘들어질지 모른다. 또 어떤 날은 마치 복권 같은 행운이 따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쏟아 놓은 낱알들과 같아서 그 모든 순간들을 알알이 헤아려 볼 순 없을 것이다. 그 안에는 분명 모난 것도 있을 것이고, 특별히 예뻐 보이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우리의 행복은 우리의 기쁨은 늘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이전 09화 모모를 아시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