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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구리 May 22. 2022

마차푸차레 말고 안나푸르나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MBC Trakking, 마르디 히말 뷰포인트를 향해가는 이 트래킹 코스는 안나푸르나가 아닌 마차푸차레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차푸차레는 fish tail이라는 별명을 가진, 히말라야의 유일한 미 등정 봉우리인데, 현지인들에게는 신성시되고 여행자에게는 미지의 장소인 그런 특별한 곳이다.


 날이 좋지 않으면 볼 수 없다는 마차푸차레를 정말 운이 좋게도 환상적인 날씨 속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카메라에는 어쩐지 마차푸차레 대신 안나푸르나가 가득했다.

  한국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이라 그런 걸까? 마차푸차레라는... 네팔에 오기로 결정한 뒤 처음 들어 본 이름이 낯설어서 일까? 아니면 애초에 오르지도 못할 봉우리 따위에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알고, 구분 지을 수 있는. 또 나만의  yes or no 항목이 생겨나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시작선에 서기도 전에 기권을 던지기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레이스가 단거리이든 장거리이든 내 모든 것을 다 쏟아내는. 그런 사람.


 여행을 다녀와서 훨씬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찍은 몇 장의 사진 중 best of best를 그리고 싶어졌다. 그림이라곤 초등학교 때,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 대신 우리를 맡아주던 동네 미술학원_기억으로 학원이라기보다는 공부방이 었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고 아파트 안에 선생님 집으로 가면 친구들이 있었고, 도화지에 이것저것 그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색연필로 포켓몬도 그리고, 물감으로는 생각했던 이것저것을 그리기를 제일 좋아했다._ 을 잠깐 다녔던 게 다 인 주제에 말이다. 제일 잘 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을 덜렁 들곤 한남동으로 향했다. 물론 당연히 예상 가능하게도 마차푸차레가 아닌 어둠이 드리운 보랏빛의 안나푸르나였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점차 사라지고, 어느새 나만 걷고 있을 때 즈음. 도착할 수 있는 한남동 주택가 속 화방에서 매주 2시간. 정말 지긋지긋하게 안나푸르나와 만났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더 진득하게 만남이 이어졌다.
 사진을 확대하여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부분을 발견해야 했다. 분명 비슷비슷한 보라색인데 또 다른 물감을 섞어 다른 색을 만들어야 했다. 어떨 때에는 내가 만든 색이 부족하여, 같은 색을 만들고자 했지만 쉬이 같은 색을 만들지 못하여 다시 처음부터 칠을 할 때도 있었다.

 캔버스 앞에서 붓만 잡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울상을 짓는 일들도 있었다. 또 반대로 평소 1시간 걸릴 법한 일들이 마법처럼 금세 끝이 날 때도 있었다.  


 한 달 반. 시작도 하지 말걸….이라고 투덜 댈 때쯤 ‘나의 안나푸르나’가 완성되었다.

 

  여러 번 칠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더라도 포기보다는 조금 더 진득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되겠다.

  눈여겨보아야 보이는 작은 사랑스러운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더 자주, 더 깊이 바라보는 사람이 되겠다.

  이유와 목적이 어떻든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 마차푸라체를 보러 갔지만, 안나푸르나를 가득 담아  사랑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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