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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맑음 스튜디오 Sep 19. 2021

내가 계속 화가 나는 이유

내가 예술가로서 추구하는 것은

  나는 어릴 때 피카소 같은 화가가 되고 싶었다.

지금은 피꺼솟*하고 화가 많은 사람이 되었다.



   사실 이 '화'는 무차별적인 분노라기보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내 마음을 긁어대서 그 마찰력에 붙어버린 '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화'는 나의 출신, 외모에 대한 지적보다 내가 가진 철학을 긁었을 때, 유독 강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 반응엔 독기가 서려있다.


  작년 여름, 한 술자리에서 "상준님은 손이 너무 느려요, 더 빨리 작업해주세요."라고 말을 들은 게 시작이었다.


내가 주어진 시간 안에 작업을 마치긴 했으나 다른 직원들보다 느리긴 했다(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직원들이 월등히 빨라서 느리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이 말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할 말은 있었다. 알코올까지 만났으니 할 말을 했다.


  "제 코드를 나중에 이어서 작업할 사람을 생각하면 막 짤 수가 없더라고요. 하하."

"그리고 제작한 서비스가 일반 사용자들 뿐만 아니라, '읽기 모드' 같은걸 사용하는 몸이 불편한 사용자들을 위해서 정리하면서 짜느라 그렇습니다."



  나는 유지보수와 접근성*을 고려하면서 작업을 하려고 노력한다. div태그만 남발하지 않고, 읽기 모드가 순서대로 읽어지도록 구조와 속성을 사용한다. 다 알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애쓰고 있다. 이유는 제일 처음 말했듯이 피카소 같은 화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했던 말 중에 "어떻게 예술가가 다른 사람의 일에 무관심할 수 있습니까?"라며 전쟁, 학살의 참혹함과 그곳의 약자들을 그려냈다.

  나는 이게 작업을 하는 사람이 가져볼 만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작업자로 거듭나기 위한, 멀리뛰기를 위한 도움닫기다.  한 스칸디나비아 항공사가 이 접근성 문제로 고소를 당해 20만 달러의 벌금을 문 적도 있고 UX/UI의 아버지인 도널드 노먼의 첫 책에도 나와있듯이...





  "그걸 왜 신경 써요? 코드야 납품하고 돈 받으면 그 뒤엔 그 사람들이 할 일이고. 읽기 모드 같은 거 쓰는 사용자는 1%도 안될걸요?" 상대가 말했다.



  이 말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할 말을 잃어 금세 진화됐다. 사실 유지보수, 접근성이 고려되지 않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 기한과 예산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도 위 요소들을 요구하지도, 이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화는 난다. 더 나은 작업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저 떳떳함이. 저 떳떳함이 그들의 작업물(디자인 혹은 기획문서)이고 내가 그 작업물을 보고 종종 개발을 맡았고, 그 작업물에도 저 떳떳함이 반영돼있다는 걸 알아서 화가 난다.




  유지보수와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이 더 나은 작업자가 되는 길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다른 고려해야 할 점들도 분명 있을 터. 나는 그걸 고려하는, 더 나은 작업자가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내가 계속 화가 나는 게 아닐까 싶다.






*피꺼솟 : '피가 거꾸로 솟는다'의 줄임말, 은어

*웹 접근성(Web Accessibility) : 웹 접근성이 높다는 것은 장애를 가진 사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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