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쌀국수집에서 알게 된 사용자 경험
웹과 앱의 UX*도 알기 벅찬데 이젠 쌀국수에도 UX가 있냐?
진정하고 들어 보라, 그냥 회사 근처에 괜찮은 쌀국수 집을 알게 되어 소개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전 날에 술도 먹었겠다 뜨끈한 국물로 정신 못 차리는 위장을 혼내주려고 든든한 국밥 한 그릇 비우려고 했으나 오랜만에 쌀국수가 먹고 싶어 졌다. 그렇게 회사 동료 세 명과 함께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건물은 온통 나무 소재로 꽉꽉 막혀있고 이름 석자만 적혀있다. 미분당.
입구 옆에 키오스크로 쌀국수를 결제하여 주문하면 몇 분 후 종업원이 "세 분이시죠? 들어오세요."라고 굳건하던 나무 문을 열고 말했다.
자리에 앉아 앞에 보이는 건 안내문이었다. 자리마다 모두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미분당은 누구나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주인의 뜻에서 탄생했습니다.
이제까지 알던 쌀국수 집들은 '쌀국수 맛있게 먹는 법' 정도만 적혀있는데 이 가게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내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리고 이 안내가 손님들에게 충분했는지 들어오자마자 잔잔한 음악만 들릴 뿐, 여럿이서 온 손님들도 모두 조용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정말 말없이 이 쌀국수 집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한 공간을 제공하려면 '조용해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한 것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 의심은 든든한 쌀국수 한 그릇으로 해소되었다.
아래와 같은 요소들 덕분에 조용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의 내부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ㄷ자 모양의 테이블이 주방을 감싸고 있으며, 서로 마주 보는 테이블은 존재하지 않는다. 친한 사람과 같이 와도 대화가 어렵다. 단 둘이 온다면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겠지만 세 명 이상 모이면 음악소리 때문에 대화 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하고, 주방 앞에서 엄숙해지고 만다.
이런 자리만 있는 것은 최대한 대화를 피하도록 하기 위함 같다. 회사 사람들끼리 오더라도 점심 후에 해야 할 일 얘기도, 최근에 뜨는 주식 종목과 코인 종목의 얘기도, 잠시 미뤄두고 대화를 멈추고 만다.
꼭 어디 외식을 할 때면 나는 흰 옷을 입고 있다. 그렇게 "저, 앞치마 좀 주세요." 종업원에게 말을 하게 된다.
가게 안에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봤자 여기저기서 "저 휴지 좀..", "저..", "저" 하는 비트만 추가할 뿐이다. 이런 상황을 쌀국수 집이 어떻게 대비할 수 있는가? 이곳은 모두에게 공통으로 제공한다.
뒤를 돌아보면 옷걸이에 걸린 앞치마가 있다. 앞치마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겨울에도 외투를 걸 수 있도록 옷걸이까지 제공한 것이다. 술집에 보면 드럼통 같은 의자 안에 옷을 넣어두기도 하는데 잘 열리지도 않고 뚜껑 열 때 요란해서 이 방법이 좋은 것 같다.
게다가 일행과 함께 가게를 오게 되면 휴지 탁, 젓가락 탁, 숟가락 탁, 소위 '젓가락 세팅'을 하게 되는데 이마저도 차단하여 각각의 자기 테이블 밑을 열어보면 세팅에 필요한 것이 모두에게 제공돼있다. 막내가 다 해주는 건 없다. 자기 인생의 막내는 자신이다.
쌀국수가 나와 한입 먹고 맛있었다면 고개를 들어 해선장 소스를 봐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테이블보다 머리 위에 구비돼있다. 테이블 바로 위에 구비해놓으면 먹을 때 방해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위치에 각자 사용할 수 있는 휴지도 같이 준비되어있는데, 놀라운 것은 머리끈이 같이 준비돼있는 것이다. 국물이 있는 음식에 긴 머리의 사람들이 불편을 느낀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이를 제공까지 해주는 음식점은 난생처음 봤다. 비록 내가 사용할 일은 없었으나 배려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올려둔 사진을 보면 안내문 위에 '물, 반찬 기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위에다 올려두세요...'라고 적혀있다. 뜨거운 음식을 먹고 나면 물이 더 필요할 수 있고, 탄수화물에 탄수화물을 얹는 K디저트 '사리 추가'는 빼놓을 수 없었으니 이래저래 필요하다. 만약 필요하다면 말없이 그 접시를 올려두면 된다.
정말 세세한 점이, 물은 당연히 물컵에 있지만 면이 담긴 그릇, 양파 등 야채가 담긴 그릇이 따로 존재한다. 주방 쪽에 올려진 그릇을 확인하고 더 주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바로 안쪽이 주방이니 대기(로딩) 시간에도 나의 주문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다.
크게 이런 세 가지의 이유로 이 쌀국수 집은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는 목적을 이루고 있다고 느꼈다. 가게를 나오고 문을 닫자마자 안에 들려오던 조용한 노래는 들리지도 않고 굳건히 닫혀 있다.
그러자 금세 문이 또 열리며 "두 명이시죠? 들어오세요." 종업원이 안내했다.
'설마 입구에서 키오스크로 비동기 주문을 받기 때문에, 저렇게 꽉꽉 막아도 밖에 몇 명이 있는지 알 수 있고, 주문량도 알 수 있고, 종업원도 주문을 직접 안 받으니 인력도 효과적으로 줄이는 ㄱ..'
까지 생각하다 '무슨 점심시간에도 이런 일 생각이냐'하면서 회사로 돌아갔다.
참고로 쌀국수도 정말 맛있었다.
*UX : 사용자 경험, User eXperience의 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