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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맑음 스튜디오 Jul 18. 2021

디자인과 출신인 내가
코딩을 시작한 이유

디발자이야기 001

  2016년 초, 나는 군대에 입대해 훈련소에 있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Google Deepmind Challenge match)가 요란했지만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매치의 결과가 무척 궁금했다. 같은 분대의 훈련병들과 몇 대 몇으로 이기고, 지고 있을지 부식을 가지고 내기를 했다. 나는 이세돌이 5승을 할 것이다. 그 훈련병은 이세돌의 3승 2패를 예상했다. 당시 조교에게 결과를 물었고 이세돌이 이미 4패를 했다고 알려줬다. 우린 모두 내기에 졌다.



  그날 밤 노트에 아래와 같은 문장을 적었다.

  "창의성도 알파고의 영역인가? 알파고가 광고를 만든다면?"



  나는 광고디자이너를 목표로 광고디자인과에 진학했다. 광고에서 발휘하는 창의성이 좋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점이 좋았다. 광고만을 보고 20대의 절반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알파고의 4번의 불계승이 내 맘을 더 움직이게 했다. '디자인은 정말 인간만의 영역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소를 나와 소식을 더 자세히 보니 이세돌이 10만 분의 7의 확률로 놓은 '신의 한 수'로 이겼다고. 외신들은 인류의 자존심을 지켰네, 인류의 존엄이네 했지만 이긴 건 이세돌이지 내가 아니었다. 나는 세상에 그런 '한 수'를 둘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시에 쓴 노트 


  그렇게 광고디자인을 그만뒀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을 찾기로 했다. 보통처럼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동시에 앞선 미래에 세상이 나로부터 원할 일을 고민했다. 앞으로 10년간 내가 뭘 할 것이고, 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대접받을 사람이 될지를 세세하게 계획했다.



1. 향후 10년간 내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2.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할 것이며, 어떤 순서로 공부할 것인지

3. 그 분야의 일을 하여 10년 뒤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4. 그런 사람의 되기 위해 최소 어느 정도의 밥벌이를 해야 하는지

5. 10년의 기간 동안 큰 사건들이 중간에 있을 텐데(제대, 졸업, 이사 등) 그 지점을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어떤 전환을 맞이할 것인지

6. 내가 선택한 그 일이 10년 후에도 전망이 좋은지, 그리고 사회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광고디자인으로 다진 기획력을 내 인생을 기획하는 데에 온 힘을 쏟은 것 같다. 이 계획의 중심엔 내가 있지만 세상이 10년 동안 어떻게 흘러가는지, 내가 선택한 기로와 세상이 맞물릴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해 에세이만 읽던 내가 이 기간에 인구학, 경제사회학, 미래의 교양에 관한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고민 끝에 3D CG와 코딩이 남아있었고 당시 공부 환경으로는 3D CG를 공부할만한 컴퓨터가 없었어서 코딩을 선택했다. NotePad++라는 에디터를 설치하고 유튜브로 올라온 무료 강의들을 시청하며 HTML 5, CSS 3을 먼저 공부했고 지디 웹과 같은 사이트에서 괜찮은 디자인의 사이트들을 클론 코딩하는 것으로 복습했다.


당시에 나는 사용했던 notpatd++라는 에디터를 사용했다. VS Code가 출시되기 직전이었어서 VS Code를 몰랐다.


  기초적인 '코딩'을 공부하고 난 뒤 '내가 뭘 더 공부해야 하지?', '뭔가 이런 걸 더 해야겠는데 이걸 하려면 뭘 공부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던 학교의 컴퓨터공학과의 웹 개발 관련 수업의 커리큘럼을 확인하고, 매주 뭘 공부하는지 적혀있으므로 공부할 순서를 정할 수 있었다.



  '제이쿼리 이걸 공부하면 되는구나?'라는 식으로 확인하고, 공부하고. 연속이었다.

소집해제 후에 컴퓨터공학과 그 수업을 직접 들으러 가 교수님께서 "디자인과인데 할 수 있겠어?"라고 오리엔테이션에 질문하셨으나 마지막 수업엔 거진 최고 성적으로 수업을 마쳤다. 하지만 나의 계획은 학교 안에서만 잘하려는 게 아니고, 나아가 더 잘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했다. 커리큘럼을 통해 공부의 순서를 발견한 것처럼 당시에 채용공고를 확인하여 어떤 능력을 원하는지 찾아보고 그걸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제이쿼리는 이제 안 하는 거야?' 내가 가고 싶었던 중견 이상의 회사와 다른 일반 회사들이 원하는 능력이 달랐다. '프레임워크?', 'ES5?', 'React?' 이게 다 뭐야? 학교의 커리큘럼과 세상에서 원하는 능력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React는 아니고 Vue라는 프레임워크를 배울 기회가 생겨 현재까지도 Vue 개발자로서 일하고 있다. 그럭저럭 그때의 계획을 지켜나가고 있다.



  나는 코딩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디자인이 인간만의 영역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테일러 브랜드라는 사이트가 있다. 유저가 제작하고 싶은 브랜드의 이름을 적고 그 브랜드의 분류, 넣었으면 하는 요소, 좋아하는 색상을 선택하면 알고리즘을 통해 여러 시안을 만들어준다. 대개 마음에 안 드는 시안을 준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드시나요?' 버튼을 누르면 그 시안을 '적절하지 않은 시안'으로 수집하여 빅데이터로 활용한다. 수정을 요구하면 화를 참지 못하는 디자이너가 여기엔 없다. 클릭 몇 번으로 새 시안을 준다. '적절하지 않은 시안'이 쌓일수록, 이 사이트는 괜찮은 시안을 적절히 주게 될 것이다.



  이처럼 불가침 영역이라 느꼈던 모든 판들에 알게 모르게 수를 놓고 있다. 바둑 기사들도 인공지능이 바둑의 세계까지 침범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허무할 것이다. 내 쪽에서 대국을 신청하지 않아도 온갖 것들이 수를 놓고, 집을 지어버렸을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코딩을 하게 되었다. 내가 좀 더 할 수 있는 영역을 늘리기 위해, "그래도 디자인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게 있을 거야." 같은 말을 더 안 하고 싶어서, 손에 쥐고 있던 것조차 떨어뜨리며 세상에 허무함을 느끼지 않고, 더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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