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별다른 낙이 없다. 푹 빠져 있는 취미 생활도 없고, 연예인을 미친 듯이 좋아해서 덕질을 해본 적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다 그게 그거고, 그저 그렇다. 이렇게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사는 내게 유일한 즐거움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그렇다고 엄청난 미식가여서 내로라하는 레스토랑에 찾아다니는 수준은 아니다. 그저 내 수준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내 입맛에 맞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음식이야말로 가장 싸고 빠르게 나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기 때문에 먹는 즐거움만큼은 포기하기가 어려워서 대신 다이어트를 안 하기로 했다.
초콜릿이나 과자같이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간식은 쌓아놓고 먹지만, 아웃백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은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간다. 특히 아웃백에서 식전에 주는 양송이 수프는 내 영혼의 음식인데, 자주 갈 수 없으니 더욱 그립다.
20대 초반에 처음 맛본 아웃백 양송이 수프의 맛은 ‘그동안 내가 먹었던 수프들은 다 가짜였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양송이가 가득 씹히고 온도도 딱 맞아 식힐 필요도 없다. 작은 볼에 담긴 수프가 나오면 접시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고도 아쉬워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먹고 나면 영혼까지 따뜻해지는 마법 같은 음식이다.
최근에 아들이 열심히 준비한 한자 시험에 합격해 축하할 겸 아웃백에 갔다. 런치 메뉴를 두 개 시켜서 수프도 두 그릇이 나왔다. 사람은 세 명인데 수프는 두 그릇. 그동안은 아들이 수프는 손도 안 댔기 때문에 남편과 내가 한 그릇씩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아들이 수프를 한 입 먹어보더니 눈이 똥그래지면서 감탄하는 게 아닌가! 그리곤 게눈감추듯 한 그릇을 비웠다. 내 숟가락이 끼어들 틈도 없었다.
남편과 수프를 나눠 먹긴 했지만, 원래 먹던 양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다. 아쉽긴 했지만 괜찮았다. 편식이 심했던 아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늘어난 게 기뻤고, 아들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으니 또 기뻤다. 요즘 부쩍 잘 먹고 쑥쑥 크는 아들이 대견했다.
아들이 먹은 게 결코 아깝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음번엔 수프 한 그릇을 추가 주문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엄마인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니까. 나도 수프를 먹는 동안만큼은 인생의 작은 낙을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