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기어, 피해의식

사회적 금기어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거 피해의식이야.” “너 진짜 피해의식이 심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가정해보자. 기분이 어떨까? 어떤 이는 불쾌함을 느끼고, 어떤 이는 분노에 휩싸일지도 모르겠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왜 우리는 ‘피해의식’이란 말에서 지극히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까? 피해의식은 일종의 사회적 금기어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금기어가 무엇인가? 종교·도덕‧관습적인 이유로 금지되거나 꺼려지는 언어 표현이다. ‘섹스’, ‘배설(똥)’, ‘죽음’ 등에 관련된 말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사회적 금기어는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기에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랬다가는 크고 작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김 대리, 어제 섹스 했어?” “선생님, 아침에 똥 싸셨어요?” “사장님은 언제 죽어요?” 이런 말이 크고 작은 곤경을 야기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두 사회적 금기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금기어는 왜 발생하는가? 사회적 금기어는 ‘보편성’과 ‘은폐’라는 이중적 구조 아래서 발생한다. 쉽게 말해, 우리 모두가 갖고 있지만(보편성) 우리 모두가 그것을 숨기려 때(은폐), 사회적 금기어가 발생한다. 이는 ‘섹스’라는 사회적 금기어가 잘 보여준다.


‘섹스’는 인간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다. 즉, ‘섹스’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 문제이다. 하지만 동시에 ‘섹스’는 모두가 공공연하게 숨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이 ‘섹스’가 사회적 금기어가 된 이유다. ‘섹스’뿐만 아니라 ‘배설(똥)’이나 ‘죽음’ 등에 관련된 말 역시 같은 이유로 사회적 금기어가 된다. ‘배설’이나 ‘죽음’ 역시 모두의 문제인 동시에 모두가 숨기고 싶어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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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은 사회적 금기어다


피해의식은 사회적 금기어의 성격을 띤다. 피해의식 역시 ‘보편성’과 ‘은폐’라는 이중적 구조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피해의식은 모두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마음인 동시에 모두가 공공연하게 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이에 대한 논증은 뒤에서 하겠다). “그건 네 피해의식이야.” 이런 말에 우리가 왜 발끈하는지 이제 알 수 있다. 피해의식이라는 말을 들을 때, 상대로부터 모욕과 비난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회적 금기어에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 바로 모욕과 비난이다. 누군가를 모욕하고 비난하기 위해 사용하는 욕설을 생각해보라. 대부분의 욕설은 사회적 금기어와 관계되어 있다. “씨발년(놈)”은 아무하고나 씹(섹스)할 여자(남자)라는 뜻이다. “똥 싸고 있네.”, “죽고 싶냐?” 등과 같은 말이 모욕과 비난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처럼 사회적 금기어는 모욕과 비난의 정서를 내포하고 있다.


피해의식은 분명 사회적 금기어의 성격을 띤다. 그러니 ‘피해의식’이라는 말에는 당연히 (사회적으로 금지된 만큼의) 모욕과 비난의 정서가 묻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인 사회관계에서 피해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함부로 했다가는 크고 작은 갈등과 마찰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이것이 우리가 피해의식이란 주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지 못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모욕과 비난처럼 들릴 수 있는 주제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원만한 사회생활의 덕목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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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렇다면 사회적 금기어는 그저 금지하면 되는 것일까? 달리 말해, 사회적 갈등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섹스, 배설, 죽음 등에 대한 논의는 그저 은폐하고 살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프로이트가 기초 세운 정신분석학의 근본적 입장이다. 이보다 우리네 삶의 양상을 적확하게 드러내는 통찰도 없다. 우리가 무엇을 금지(억압)하면 그것은 반드시 되돌아온다. 살다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음습하고 뒤틀어진 부분이 튀어 오를 때가 있다. 그것은 모두 억압된 것이 되돌아온 것이다.


섹스가 이를 잘 보여주지 않는가? 정숙한 삶을 지향하느라 성性적인 면을 과도하게 억압했던 이들이 있다. 그들은 계속 정숙한 채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의 억압된 성적 욕망은 대부분 과도한 폭력성, 파괴적인 성적 취향, 도벽 등과 같은 뒤틀어진 마음이 되어 불쑥불쑥 튀어 오른다. 이처럼 억압된 것은 의도치 않은 영역에서 반드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피해의식 역시 정확히 그렇다. 섹스, 배설, 죽음과 같은 원초적인 금기보다는 덜 하지만, 피해의식 역시 일정 정도 사회적 금기의 영역에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피해의식은 원활하게 논의되기 어렵다. 하지만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프로이트의 진단은 피해의식에도 적용된다. 피해의식을 그저 없는 것처럼 은폐하고 지내면 어떻게 될까? 성적인 면을 과도하게 억압했던 이들처럼, 우리 역시 마음속 한 부분이 계속 어두워지고 뒤틀어질 수밖에 없다.


건강한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금기를 드러내고 원활하게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섹스에 대한 건강한 마음은 언제 갖게 되는가? 섹스에 관한 논의를 원활하게 할 수 있을 때다. 피해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피해의식에 관해 원활하게 논의할 수 있을 때 피해의식에 대한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된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금기를 드러내는 일은 언제나 불편함과 불쾌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건강한 마음에 이르기 그토록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불편하고 불쾌한 것을 회피하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오랜 습관이니까 말이다.


세상의 모든 귀하고 소중한 것은 드물고 어려운 법이다. 이제부터 하게 될 피해의식에 관한 논의에서 때로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불편함과 불쾌함은 기꺼운 마음으로 견딜 가치가 있다. 피해의식 너머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건강한 마음에 이르기 위해서 불편함과 불쾌함을 견디며 피해의식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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