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식의 과잉해석과 과소해석

피해의식의 과잉해석


피해의식은 있음과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그렇다면 피해의식을 균형 있게 다룬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피해의식을 과잉해석하지도 않고 과소해석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피해의식의 과잉해석과 과소해석은 무엇일까? 먼저 이 두 가지 불균형 상태가 하나의 뿌리에 나왔다는 사실부터 밝혀두자. 그 뿌리는 ‘피해자-피해의식’을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인식하는 오해다.


피해의식의 과잉해석이 무엇인가? 피해자가 자신의 상처를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여전히 피해의식에 빠져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어린 시절 밤길에 강도를 당한 피해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는 그런 상처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밤길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밤길을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 그런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아직도 그날의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이 바로 피해의식의 과잉해석이다.


이런 피해의식의 과잉해석은 자기 파괴적이다. 충분히 노력해서 삶의 변화를 이룬 이가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하기보다 오히려 비난하고 다그치는 것보다 자기 파괴적인 일도 없다. 이런 자기 파괴적인 과잉해석은 왜 발생했을까? ‘피해자-피해의식’을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즉, 피해를 받으면 반드시 피해의식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만약 그가 ‘피해자이더라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런 자기 파괴적인 마음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나는 분명 피해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그 상처를 잘 치유해왔구나.” 이렇게 균형 잡힌 시선을 가질 수 있다. 즉, 피해자와 피해의식은 개연성이 있을 뿐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피해의식의 과잉해석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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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의 과소해석

그렇다면 피해의식의 과소해석은 무엇인가? ‘피해자가 아니면 피해의식은 없다’고 단정하는 마음(“나는 강도를 당한 경험이 없으니 어떤 피해의식도 없어.”)이거나 혹은 ‘피해자가 피해의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마음(“나는 강도를 당한 경험이 있으니 밤에 나가지 않는 게 당연한 거야.”)이다. 이런 피해의식의 과소해석은 자기 기만적이다. 분명히 존재하는 자신의 어둠을 애써 외면하려는 마음은 기만적이다. 자신과 타인의 삶을 슬픔에 빠뜨리는 자신의 어둠을 극복하려 하기보다 손쉽게 정당화하려는 마음은 얼마나 기만적인가?


이런 자기 기만적인 과소해석 역시 ‘피해자-피해의식’이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피해를 받지 않아도 피해의식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피해를 받았지만 피해의식에 휩싸이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의 기억은 ‘사실의 기억’보다 ‘상상의 기억’에 더 많이 지배받고 있다. 그래서 피해를 받은 ‘사실’이 없더라도, 피해를 받은 것 같다는 ‘상상’이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또 피해를 받은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의 기억’을 왜곡‧편집하여 ‘상상의 기억’으로 증폭시키지만 않는다면 심각한 피해의식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


‘사실’과 ‘기억’, 혹은 ‘피해자’와 ‘피해의식’ 사이의 삶의 진실에 직면해야 한다. 그 삶의 진실에 직면할 때에만 자신의 피해의식을 거리 두어 볼 수 있는 공간이 열리게 된다. 오직 그 공간에서만 피해의식의 과잉해석과 과소해석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시각으로 피해의식을 성찰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 파괴적인 혹은 자기 기만적인 피해의식의 내적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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