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의식’과 ‘피해의식’

‘피해자 의식’과 ‘피해의식’


피해의식은 매우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는 주제다. ‘피해의식’은 ‘피해자 의식’이라는 개념과 미묘하고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가 많다. 그 오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피해자 의식’과 ‘피해의식’의 차이부터 구분해보자. ‘피해자 의식’과 ‘피해의식’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둘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피해자 의식’과 ‘피해의식’을 정의해보자. ‘피해자 의식’은 특정한 사건을 통해 피해를 받았다는 ‘사실’에 의해 발생하는 마음 상태(당황‧증오·후회‧수치심‧복수심 등등)다. 반면 ‘피해의식’은 특정한 사건을 통해 피해받은 ‘기억’으로 인한 과도한 자기방어의 마음 상태다. 간단히 말하자면, ‘피해자 의식’은 ‘사실’의 문제이고, '피해의식'은 ‘기억’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피해자 의식’과 ‘피해의식’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피해자가 아니면(피해받은 ‘사실’이 없으면) 피해의식(‘기억’)이 생길 개연성이 작고, 피해자면(피해받은 ‘사실’이 있으면) 피해의식(‘기억’)에 사로잡힐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의식-피해의식’이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 피해받은 ‘사실’이 없더라도 피해의식(‘기억’)이 있을 수 있고, 피해받은 ‘사실’이 있더라도 피해의식(‘기억’)이 없을 수 있다. 이는 피해자(피해받은 ‘사실’이 있는 이)와 피해의식의 관계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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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의식-피해의식’의 네 가지 관계성


‘피해자 의식’과 ‘피해의식’의 관계는 네 가지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피해자이기에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경우다. 이는 ‘피해자 의식’이 ‘피해의식’이 된 경우다. 둘째는 피해자이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경우다. 이는 ‘피해자 의식’이 ‘피해의식’으로 옮겨가지 않은 경우다. 셋째는 피해자가 아니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경우다. 이는 ‘피해자 의식’ 없이도 ‘피해의식’이 발생한 경우다. 넷째는 피해자가 아니기에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은 경우다. 이는 ‘피해자 의식’이 없기에 ‘피해의식’도 발생하지 않은 경우다.


이 네 가지 경우를 어린 시절 강도를 당한 경험을 예로 설명해보자. 첫 번째 경우는 강도의 경험(사실)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밤에 집 밖을 나가지 않게 된 경우다. 이는 ‘피해자 의식’(강도를 당한 사실)이 ‘피해의식’(기억으로 인한 과도한 자기방어) 옮겨간 경우다. 두 번째 경우는 강도의 경험이 있지만 필요한 일이 있을 때는 밤에 집 밖을 나갈 수 있는 경우이다. 이는 ‘피해자 의식’이 있지만 ‘피해의식’으로 옮겨가지 않은 경우다.


세 번째는 어떤 경우일까? 강도를 당한 경험이 없지만 (매체나 주변 이야기를 듣고) 강도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상상 혹은 불안 때문에 밤에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는 ‘피해자 의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의식’이 생긴 경우이다. 네 번째 경우는 강도를 당한 경험이 없어서 밤길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나설 수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피해자 의식이 없기 때문에 피해의식도 발생하지 않은 경우다. 이처럼, ‘피해자-피해의식’은 네 가지 관계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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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의식은 ‘사실’이고, 피해의식은 ‘기억’이다


이 네 가지 경우가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가? ‘피해자 의식’과 ‘피해의식’은 마치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음료가 나오는 것처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네 가지 경우가 발생하는 것일까? ‘피해자 의식’은 피해를 받은 ‘사실’에 근거하는 반면 ‘피해의식’은 피해를 받은 ‘기억’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제 ‘피해자 의식-피해의식’이 특정한 상관관계에 있을 뿐,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실-기억’은 상관관계에 있지만,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건(강도)이 일어나면 그것은 ‘사실’이다. 그때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억’이 곧 ‘사실’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억’은 ‘사실’의 ‘기억’이 아니다. 예컨대, 우리의 ‘기억’은 특정한 ‘사실’을 촬영한 CCTV 화면을 되돌려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실’과 ‘기억’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보라. ‘사실’이 ‘기억’되기도 하지만, ‘사실’이 ‘기억’되지 않기도 한다. 심지어 ‘사실’이 아닌 일이 ‘기억’되기도 한다. ‘사실’은 언제나 조작되고 왜곡되고 편집되어 ‘기억’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에 대해 답하기 위해 ‘기억’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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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대상과 신체의 마주침이다


기억은 어떻게 형성될까? 기억은 대상과 신체의 마주침이다. 이는 어려운 말이 아니다. 어렸을 때 강아지를 키운 기억이 있다고 해보자. 그것은 강아지(대상)와 ‘나’의 신체가 마주친 결과다. 과거 어느 시점에 ‘나’의 신체가 강아지를 보고 듣고 만진 결과가 바로 강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어떤 대상과 ‘나’의 신체의 마주침은 전적으로 사실일까? 달리 말해, ‘나’의 기억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강아지에 관한 ‘나’의 기억은 사실이 아니다. 이는 ‘나’의 정신에 문제(기억상실‧치매)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억이 대상(강아지)과 신체(나)의 마주침이라면, 그 마주침에는 반드시 ‘여백’과 ‘조정’이 포함된다. ‘여백’부터 이야기해보자. 인간의 신체는 유한하기에 어떤 대상도 그 전체를 기억할 수 없다. 반드시 ‘여백’이 생긴다. 아침에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던 강아지를 보며 학교를 갔다. 그리고 하교 후에 다시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겨준 강아지를 보았다. 이 두 사건은 분명 ‘사실’이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그날 강아지가 건강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이 ‘기억’은 정말 ‘사실’일까? 그렇지 않다. ‘나’의 등교와 하교 사이에 강아지는 심한 복통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다. 기억은 대상과 신체의 마주침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체는 유한하기에(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기에) 반드시 ‘여백’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여백’을 상상으로 메운다.


기억은 마치 만화책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는 만화책을 보지만, 만화책을 다 보면 그 내용이 우리 머릿속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남는다. 이는 고정된 장면(사실)과 장면(사실) 사이의 ‘여백’을 우리가 상상으로 메우기 때문이다. 같은 만화책(사실)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애니메이션(기억)은 모두 다르다. 이것이 우리 ‘기억’의 정체다.


‘기억’이 ‘사실’이 아닌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조정’이다. 기억은 대상과 신체의 마주침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체는 매 순간 그 상태가 다르다. 바로 그 때문에 대상과 신체의 마주침의 결과는 순간순간 ‘조정’된다. 한가한 일요일 오후에 강아지에게 밥을 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연인과 이별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에도 그런 ‘기억’이 있을까? 아마 그런 ‘기억’은 없을 테다.


그렇다면 그날 강아지는 집에 없었거나 밥을 주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가한 일요일 오후에도, 연인과 이별한 날에도 강아지는 언제나 집에 있었고, 밥을 주었을 테다. 단지 일요일 오후의 ‘나’의 신체는 강아지를 기억할 만큼 분명하게(주의 깊게) 지각했고, 이별한 후의 ‘나’의 신체는 강아지를 기억할 수 없을 만큼 흐릿하게(부주의하게) 지각했을 뿐이다. 이처럼 ‘기억’은 신체의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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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사실’이 아니다


‘여백’과 ‘조정’에 따른 기억의 불투명성은 복잡한 논의 없이도 일상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나 가족들과 과거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가? 그때 서로 ‘기억’하고 있는 ‘사실’이 너무 달라서 놀랐던 경험이 얼마나 많던가. 이는 ‘기억’은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여백’을 상상으로 메우고, ‘나’의 신체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기억’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은 너무 쉽게 왜곡되고 조작되고 편집된 채로 ‘기억’된다.


‘기억’은 언제나 ‘사실’을 조작, 왜곡, 편집한 것이다. 그래서 ‘사실’과 ‘기억’은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있지 않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피해자 의식’(사실)과 ‘피해의식’(기억) 역시 이러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 의식’(사실)이 있으면 ‘피해의식’(기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 의식’(사실)이 있더라도 ‘피해의식’(기억)은 없을 수 있고, 심지어 ‘피해자 의식’(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의식’(기억)이 있을 수 있다.


‘기억’에 관한 이러한 삶의 진실은 피해의식 관한 두 가지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다. 누군가는 피해받은 사실이 없음에도(정확히는 사실들의 ‘여백’을 상상으로 메우고 ‘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는 피해받은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전자는 자신의 미숙함이 폭로되어 불편하고, 후자는 누군가의 성숙함을 보게 되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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