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식에 대한 그릇된 진단

피해의식의 두 가지 진단


“그건 그 사람의 피해의식이지.” 세상 사람들은 타인의 피해의식에 대해 진단한다. 이런 피해의식의 진단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적확한 진단과 그릇된 진단. 즉, 한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통해 그의 피해의식을 적확하게 진단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피해의식이 없는 이를 오해해서 피해의식이 있다고 진단할 수도 있다. 이 두 경우는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


적확한 진단은 왜 문제인가? 한 사람의 피해의식을 적확하게 진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애정과 관심이 아닌 비난과 폄하의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문제가 된다. 가난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이를 생각해보자.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보고 “그건 네 피해의식이지.”라고 진단할 수 있다. 이는 분명 적확한 진단이다. 하지만 그 진단이 애정과 관심이 아니라 비난과 폄하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면, 그런 진단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폄하할 마음으로 한 사람의 피해의식을 진단하는 것은 졸렬하고 저열한 공격일 뿐이다.


그릇된 진단은 무엇인가? 한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잘못 해석해서 피해의식으로 진단하는 경우다. ‘유빈’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세태를 종종 비판한다. ‘유빈’의 그런 태도와 행동에 대해 이렇게 진단하는 이들이 있다. “외모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네.” 이는 그릇된 진단이다. ‘유빈’의 사회 비판적 태도와 행동은 피해의식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조금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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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의 그릇된 진단은 왜 발생하는가?


이런 그릇된 진단은 왜 발생하는가? 즉, 세상 사람들은 ‘유빈’을 왜 오해하는가? 그들이 보기에 ‘유빈’이 못생겼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유빈’만의 일이 아니다. 가난한 이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이, 가난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황당한 논리는 현실적으로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다시 묻자. 왜 세상 사람들은 ‘유빈’을 오해하는가? ‘유빈’이 못생겼기 때문인가? 아니다. 피해자는 반드시 피해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유빈’은 못생겼다(가난하다). 못생긴(가난한) 이들은 피해를 받는다. 피해는 반드시 피해의식이 된다. ‘유빈’은 피해의식이 있다.> 이것이 ‘유빈’을 오해한 이들의 논리 구조다. 이 논리 구조 속에 있는 이들은 당연히 ‘유빈’의 모든 태도와 행동을 피해의식으로 진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논리 구조는 정당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논리를 전개하는 ‘전제’(‘유빈’은 못생겼다.)도 틀렸고,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피해는 반드시 피해의식이 된다.)도 틀렸다. ‘유빈’이 아름다운지 추한지는 주관적인 평가이므로 보편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전제로 사용될 수 없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유빈’이 아름다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유빈’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는 ‘유빈’의 사회 비판적인 태도와 행동을 피해의식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없다.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 역시 틀렸다. 피해자와 피해의식은 개연성이 있을 뿐, 필연적이지는 않다. 즉, 피해자이면 피해의식이 생길 개연성은 크지만 반드시 피해의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유빈’을 오해한 논리 구조를 다시 생각해보자. 먼저 ‘전제’가 옳다고 해보자. 즉, ‘유빈’이 누가 보더라도 못생겼다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외모 때문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고 해보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빈’이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두고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바로 결론지을 수는 없다. 사람과 상황, 조건에 따라, 동일한 피해를 받더라도 피해의식이 생길 수도 있고, 생기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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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피해의식을 구분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일들


물론 피해를 받으면 피해의식이 생기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강도를 당했지만 다시 밤길을 나설 수 있게 된 씩씩한 이들이 있는 것처럼, 외모 혹은 가난 때문에 상처받았지만 피해의식에 잠식되지 않은 건강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피해자였지만 온 힘을 다해 피해의식으로부터 벗어난 이에게 다시 피해(상처)를 준다. 이런 사례는 주위에 흔하다.


‘수찬’은 피해자다. 우리 시대에 자본적 차별로 인한 피해는 엄존한다. ‘수찬’은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상처받은 피해자다. ‘수찬’은 지금 협동조합을 만들어 일하고 있다. ‘수찬’은 피해자이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수찬’은 피해받은 기억이 있지만 그 때문에 자신을 과도하게 방어하려는 마음은 없다. ‘수찬’이 협동조합에서 고되게 일하는 이유는 조금 더 많은 이들이 자본적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서다.


‘민정’은 피해자다. 우리 시대에 성차별로 인한 피해는 엄존한다. ‘민정’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상처받은 피해자다. ‘민정’은 지금 페미니즘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민정’은 피해자이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민정’은 피해받은 기억이 있지만 그 때문에 자신을 과도하게 방어하려는 마음은 없다. 누군가를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싫어하거나 혐오하지 않는다. 그녀가 페미니즘 운동에 동참하는 이유는, 긴 시간 견고하게 자리 잡은 성차별에 저항해 조금 더 인간다운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라서다.


‘수찬’과 ‘민정’은 피해자이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현실은 낙관적이지 않다. ‘수찬’과 ‘민정’은 그들의 선의와 상관없이 2차 피해를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찬’과 ‘민정’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종종 공격을 받는다. “자기가 돈 벌 능력이 안 되니까 협동조합이나 하는 거지.” “페미니즘으로 왜 자기 분풀이를 해.” 이는 자유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려는 마음을, 피해의식(개인적 열패감이나 복수심)으로 매도하는 방식의 공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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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이 빈약하거나 부재할 때


피해의식에 대한 적확한 진단이 졸렬하고 저열한 공격이라면, 피해의식에 대한 그릇된 진단은 투박하고 무지한 공격이다. 피해의식에 대해 그릇된 진단을 하는 이들은 투박하고 무지하다. 타인의 삶을 섬세하게 살필 수 없는 투박함, 자신의 삶 너머에 있는 진실을 보지 못하는 무지함. 이것이 피해의식에 대한 그릇된 진단이 발생하는 조건이다. 무지하고 투박한 이들은 언제나 그릇된 진단을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세계에 대한 안목이 협소하거나 부재한 까닭이다.


안목이 협소하거나 부재한 이들의 공통적인 삶의 태도가 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목이 협소(부재)한 이들이 낯선(자신의 세계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은 간편하다. 그들은 그 낯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수준에서 손쉽게 해석해버린다. 이는 마치 깊이 있는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없는 이들이 “이런 그림 나도 그리겠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안목이 협소(부재)한 이들에게 피해자이지만 피해의식에 휩싸이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처를 받으면 마음이 뒤틀어져 반드시 피해의식에 휩싸여야만 한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보이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무언가 은밀한 꿍꿍이나 노림수를 숨기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수찬’과 ‘민정’을 피해의식에 잠식당한 존재로 오해했던 이들의 마음 상태다. 그들의 오해는 ‘수찬’과 ‘민정’이란 낯선 존재를 자신의 수준(세계관)에서 손쉽게 해석해버렸기에 발생한 것이다.


피해를 받았지만 피해의식에 휩싸이지 않고 살아가는 성숙한 이들은 (드물기는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한 사람의 피해의식에 대해 섣불리 진단해서는 안 된다. 모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고 그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빈약한 안목의 결과일 뿐이다. 피해의식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다. 그것이 이해할 수 없었던 ‘나’와 ‘너’와 ‘우리’를 이해하는 안목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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