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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 : 마르크스

왜 망설이기만 하는가?

인간은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사유가 진리인지, 실재성과 힘을 갖는지, 이 세상에 속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독일 이데올로기』 <포이어바흐의 테제> 칼 마르크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나이가 많든 적든 이런 신세한탄을 하는 이들은 흔합니다. 노년에 접어든 많은 이들이 회한에 잠겨 이런 신세한탄을 하곤 하죠. 젊은이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생, 이미 사랑은 끝났지만 이별하지 못하는 연인, 직장이 불만족스러운 직장인, 결혼을 후회하며 함께 사는 부부. 이들 역시 “이건 내가 바랐던 삶이 아니었는데”라며 신세한탄을 하며 삽니다.   

   

 어쩌면 회한에 잠긴 노인들과 후회하는 젊은이들은 서로 상관없는 이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신세한탄을 하던 대학생이, 연인이, 직장인이, 부부가 나이 들어 깊은 회한에 잠긴 바로 그 노인이 되니까요. 그렇다면 왜 많은 이들이 자신이 원치 않는 삶 속에서 신세한탄을 하며 살아가는 걸까요? 거기에는 많은 현실적 이유가 있을 겁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보장하기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만날 때 마다 싸우지만 오래만나 서로 익숙하기 때문이 연인 관계를 이어가기도 합니다. 직장이 숨이 막히지만 먹여 살려야 하는 처자식이 있어서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혼했을 때 치러야 하는 정서적‧경제적 문제들 때문에 결혼생활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분명 이런 저마다의 현실적인 이유가 자신이 원치 않는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원인 겁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현실적인 이유가 정말 원치 않는 삶을 이어가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유부단함입니다. 조금 야박하게 말해도 좋을까요? 원치 않는 삶을 이어가게 하는 수많은 현실적인 이유들은 모두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정당화하는 변명이거나 핑계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렇지 않나요? 주변을 돌아보면 전공을 바꾸지 말아야 할, 이별하지 않아야 할, 사표를 내지 말아야 할, 이혼을 하지 말아야 할 수 많은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삶의 방향을 과감하게 바꾸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 신세한탄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우유부단함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궁금해집니다. 왜 어떤 이는 강단 있게 결단하고, 또 어떤 이는 늘 망설이며 우유부단할까요? 그것은 타고남, 즉 성격이나 기질의 문제일까요? 쉽게 말해,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나 기질이 있는 이들이 강단 있는 결정하게 되는 걸까요? 삶의 한 단면만을 보면 그런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연속적인 삶 전체를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결단력은 지속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기질적으로 강단 있는 이들은 잠시의 결단 뒤에 이내 다시 우유부단함으로 돌아옵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이들은 한 두 번은 강단 있는 결단(자퇴‧이별‧사표‧이혼…)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단은 항상 성급하고 경솔했기에 반드시 크고 작은 후회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질적으로 강단 있는 이들이 시간이 지나 오히려 더 우유부단해지는 경우한 흔한 이유일 겁니다. 삶은 성격(기질)만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 녹록한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우유부단을 넘어설 수 있는 강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이렇게 답합니다. “인간은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사유가 진리인지, 실재성과 힘을 갖는지, 이 세상에 속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진정한 강단은 ‘확신’에서 옵니다. 나의 생각이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란 확신. 이 ‘확신’이 없다면 늘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이런 ‘확신’이 있다면 삶의 중요한 기로에서도 흔들지 않고 과감하게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이런 ‘확신’은 성격이나 기질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확신’은 ‘실천’에서 옵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 있지요. 하지만 아무나 그 생각에 따라 강단 있는 결단을 내리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성격이나 기질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고집하는 이들이 있죠, 하지만 그런 이들의 생각이 ‘확신’인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고집하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그의 삶 속에 그 어떤 실천도 없다면 막상 실존적인 문제(자퇴‧이별‧사표‧이혼…) 앞에서 우유부단하게 주저하고 망설이기만 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누구나 생각이 있지만, 그 생각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실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어떤 인간이든 “인간은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사유(생각)이 진리인지 실재성과 힘을 갖는지” 알게 됩니다. 이는 우리네 일상에 충분히 입증 가능한 삶의 진실입니다. 다들 우유부단하게 직장을 다닐 때, 강단 있게 직장을 그만두었던 직장인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몇 해 동안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이러저런 실험(실천!)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실천’을 통해서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 정말 후회하지 않을 생각(진리!)인지, 또 그 생각이 정말 실재성과 힘을 갖고 있는지를 검증했던 겁니다. 그는 ‘실천’을 통해 ‘확신’을 얻었기에 어떤 망설임도 없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단을 했던 겁니다. 

      

 우유부단한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유부단한 이들은 ‘주어진 삶’과 ‘원하는 삶’ 사이의 간극을 좁힐 어떤 실천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주어진 삶’ 속에서 안주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상상할 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네들이 늘 망설이기만 하며 우유부단한 이유입니다. “이건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 아니었어.” 나이 들어 한탄하며 살고 싶지 않다면 우유부단과 결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자신의 삶을 실험하는 크고 작은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할 겁니다. 우유부단을 끊어낼 삶의 ‘확신’은 오직 그 ‘실천’을 통해서만 쌓이게 되니까요.  



『철학자의 일상적 조언』

     

이제껏 철학은 세계를 다만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다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독일 이데올로기』 <포이어바흐의 테제칼 마르크스 

    

 ‘공부’하지 마세요. 우유부단과 결별하고 싶다면 더 이상 ‘공부’하지 마세요.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죠? 왜 이 글을 읽고 있나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인가요? 아니면 타인과 세계를 ‘해석’하고 싶어서인가요? 만약 이 글을 자신의 ‘변화’가 아닌 타인과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서라면 지금 이 책을 덮으세요. 

 동서고금의 공부 중 가장 오래되고 깊이 있는 공부는 명실 공히 ‘철학’입니다. 이런 ‘철학’은 긴 시간 어떤 기능을 해왔던 것일까요? 마르크스는 “이제껏 철학은 세계를 다만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다.”고 합니다. 마르크스는 지금 ‘철학’이라는 공부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철학’이 실제로 삶을 바꾸기보다 삶을 관망하며 이러 저리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만 사용되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철학’이라는 공부만이 그럴까요? 우리가 했던, 하고 있는, 할 ‘공부’ 역시 그렇지 않나요?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 타인과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공부’는 ‘해석의 도구’이기를 멈춰야 합니다. 우유부단한 이들이라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 진정한 ‘공부’, 즉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부는 ‘변화의 도구’이어야 합니다. 하나를 공부해서 하나를 알게 되면 자신의 삶 안에서 하나의 ‘실천’을 이뤄내야 합니다. 그렇게 ‘공부’는 자신과 세계를 바꿔 나갈 수 있는 ‘변화의 도구’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공부 중 가장 먼저 해야 할 ‘공부’는 ‘변화의 도구’로서 공부하려는 태도에 관한 공부일 겁니다. 이것저것 게걸스럽게 지식을 채우려는 우유부단한 이들은 마르크스의 사자후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겁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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