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은 왜 불편할까요?"

헤라클레이도스 ‘변화’

나와 다른 것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크고 작은 불편함을 준다. 나는 조용히 있고 싶은데, 쉴 새 없이 떠드는 친구가 있으면 불편하다. 나는 혼자 집에서 있고 싶은데, 동생이 밖에 나가서 놀자고 다그칠 때 불편하다. 나는 피자를 먹고 싶은데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해놓으면 불편하다. 나는 유튜브를 보고 싶은데 아버지가 공부를 하라고 할 때 불편하다. 이것은 모두 ‘다름’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누군가의 성격, 취향, 생각이 나와 다를 때 불편하다. 사람만 그럴까? 아니다. 사물도 마찬가지다. 오래 쓴 아이폰 대신 안드로이드폰을 써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정보를 검색하는 것부터 친구와 대화하는 것까지 이래저래 불편한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이처럼 이전에 사용하던 물건 대신 새로운 물건을 사용하게 될 때 불편하다. 이것 역시 다름의 문제다. 그전에 쓰던 물건과 지금 쓰는 물건이 다르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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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불편함, 같음=편안함


다름은 불편함을 준다. 동시에 같음은 편안함을 준다. 이유가 무엇일까? 다름은 낯섦이고, 같음은 익숙함이기 때문이다. 같음은 익숙하다. 그래서 익숙함은 편안함을 준다. 다름은 낯섦이다. 그래서 낯섦은 불편함을 준다. 집이 한 없이 편안한 이유는 익숙하기 때문이고, 처음 놀러간 친구 집이 불편한 이유는 낯설기 때문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다름을 피하고 같음을 쫓는다. 나와 다른 친구 대신 나와 같은 친구를 찾으려한다. 하지만 그런 삶이 지속될 수 있을까? 아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것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살아가면서 그 다름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다름이 주는 불편함과 불쾌감을 받아들이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너무 성급하게 답하기 전에 물어야 한다. ‘다름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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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흐른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헤라클레이도스Heraclitus라는 철학자에게 구해보자. 그는 기원전 6세기 말,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다. 헤라클레이도스 철학의 핵심은 ‘변화’에 있다. 그는 “모든 것은 흐른다.”라고 말하며 세상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함을 강조한다. 그는 만물의 근원이 불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단순히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적 원소가 불과 관련 있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헤라클레이도스의 불에 관한 주장 역시 변화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불의 죽음이 공기의 입장에서는 생겨남이고, 공기의 죽음이 물의 입장에서는 생겨남이다” 헤라클레이도스의 말이다. 그는 불이 사라질 때 공기가 생겨나고, 공기가 사라질 때 물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즉, 그는 불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로 이해한 셈이다. 불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그 사이에 또 무엇인가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그 원리 속에서 세상 만물을 이해한 것이다.


헤라클레이도스는 매일 뜨는 해마저 날마다 새롭다고 생각했다. 그는 해가 날마다 새롭게 바뀐다는 생각을 확장하여 우주 전체가 항상 변화한다는 이론을 확립했다. 헤라클레이도스는 모든 것은 계속 움직이며 아무 것도 가만히 정지해있지 않기 때문에 세계는 흐르는 만물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세계는 흐르는 만물과 같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세상 만물이 모두 다르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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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같음’이라는 수수께끼


어제의 강물과 오늘의 강물은 다르다. 왜 다른가? 강물이 계속 흘렀기(변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화는 다름을 낳는다. 세상 만물이 흐른다면 같음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흐르는 세상에서 같은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다른 것들이다. 헤라클레이도스의 말이 옳다면 우리는 영원히 불편함과 불쾌함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름은 불편함과 불쾌함을 불러일으키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는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흐르는 강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것들은 변화함으로써만 같아진다는 의미다.” 「우주의 파편들The cosmic fragments」 헤라클레이도스 저, 제프리 커크 편집


지금 헤라클레이도스는 ‘다름=같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사람’ 헤라클레이도스의 별명이다. 그의 별명처럼 그의 철학은 수수께끼처럼 난해하다. 난해한 수수께끼를 천천히 풀어보자.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볼까? 끊임없는 변화를 본다. 달리 말해,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어제 발을 담갔던 강물과 오늘 발을 담갔던 강물은 분명 다른 강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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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강물’인 이유


하지만 흐르는 강물을 보며 정작 중요한 사실 하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강물이 흐르지 않고 멈춰버렸다. 그때 그것은 강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흐르지 않는 것은 강물이 아니다. 이 예는 너무 비현실적인가? 그렇다면 강물 옆에 수로를 파서 파이프를 연결해서 매끈하게 물을 흐르게 해보자. 그것은 강물인가? 아니다. 그것 역시 강물이라 말할 수 없다.


강물이 강물인 이유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흘러가기 때문이고 또 매순간 다름을 만들어내는 강물 특유의 물살의 (결코 매끈하지 않은) 출렁임 때문이다. 그 끊임없는 ‘다름’ 있기 때문에 어제 본 그것도 강물이고 오늘 본 그것도 강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강물(어제)=강물(오늘)’의 같음은 매순간의 다름에서 온다. ‘다름’ 때문에 ‘같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헤라클레도스의 말처럼, “어떤 것들은 변화함으로써만 같아진다.”


이제야, ‘다름=같음’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헤라클레이도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세상 만물은 다르기 때문에 같다. 시험을 못 치면 슬퍼하고, 게임을 할 때 즐거워하는 친구가 있다. 매 순간 그 친구의 감정은 다르다. 하지만 바로 그 다름이 바로 그 친구의 같음을 만들어낸다. 시험을 못 쳐도 슬프고 게임을 할 때도 슬프면 그 친구는 그 친구가 아닐 테니까. 이제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다름은 무엇일까? 같음이다. 다르기 때문에 같아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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