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설득하고 싶나요?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며 산다. 그런 대화들에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대화를 하며, 특정한 지식을 배우고 알려주기 위해 대화를 한다. 아니면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거움을 위해 대화하기도 한다. 의사소통, 지식전달, 즐거움 등이 대화의 목적이다. 하지만 대화의 목적 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설득이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대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감동적으로 본 프랑스 영화가 한편 있다고 해보자. 나는 친구와 그 영화를 함께 보고 싶다. 하지만 그 친구는 다른 영화에 빠져 내가 말하는 영화에는 시큰둥하다. 이럴 때 나는 그 친구를 설득해야 한다. ‘그 영화는 정말 흥미롭다’는 나의 의견과 주장을 친구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지금 푹 빠져 있는 영화가 있어서 다른 영화에는 관심조차 없는 친구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설득하는 기술, 수사학
이런 설득에 관련된 학문이 있다. ‘수사학’rhetoric. 수사학修辭學란 말 그대로, 말辭하는 법을 익히는修 학문이란 뜻이다. 즉, 이는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여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수사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발전했고, 이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Rhétorique,」이란 저서로 명료하게 정리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을까?
“설득의 수단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화자의 인품에 있고, 둘째는 청중에게 올바른 (목적한) 태도를 만들어내는 데 있으며, 셋째는 논거 자체가 그럴듯한 실제 사례를 들어 증명되는 한에 있어서 논거 그 자체와 관련을 맺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화자의 인품(에토스), 둘째는 청중의 듣고자하는 태도를 만드는 것(파토스), 셋째는 실제 사례를 들어 증명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다(로고스). 쉽게 말해, 말하는 이가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하고, 말하는 이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잘 열수 있어야 하고, 또 말하는 이는 논리적 근거를 갖춰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설득이 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설득의 세 가지 요소를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라고 말했다.
에토스ethos
'에토스ethos'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에토스는 쉽게 말해, 말하는 이의 신뢰감(화자의 인품)이다. 에토스ethos는 도덕·윤리를 의미하는 ‘ethics’의 어원이다. 도덕과 윤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관습, 가치관에 결부된 문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에토스는 대화(설득)가 진행 중인 사회 구성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관습, 가치관 등을 의미한다.
이제 왜 에토스가 말하는 이의 신뢰감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남의 것을 훔쳐서는 안 된다!”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이가 도둑질을 밥먹듯 하며 관습과 가치관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떤가? 우리는 그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의 말에 설득될까? 설득은커녕 “너나 잘 살아라!”라고 반발심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사회의 공통적인 관습과 가치관(에토스)을 벗어나는 삶을 살아왔던 이의 말에 설득되기 어렵다. 이런 에토스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화자의 인품은 그를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로 만들 수 있게끔 이야기될 때 설득의 원인이 된다. 대체로 우리들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믿을 만한 사람을 더욱 쉽게 신뢰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지식의 범주를 벗어난 문제점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할 때 우리들은 믿을 만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파토스pathos
그렇다면 '파토스pathos'는 무엇일까? 파토스는 감정, 충동, 열정 등으로 번역 된다. 파토스는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감정적인 부분들이다. 에토스가 말하는 사람과 관계되는 것이라면, 파토스는 듣는 사람과 관계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에 따르면, 듣는 이의 감정, 충동, 열정에 공감하고 교감함으로써 설득이 가능하다. 설득에서 파토스는 중요하다. 사람은 항상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판단해야 하는 자가 죄가 없거나, 혹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반면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은 정반대의 판단을 내릴 것이다. 기대하는 일이 잘 될 것이라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미래는 좋은 것으로 보이고, 어떤 일에 관심이 없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반대로 보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인간은 자주 감정, 충동, 열정에 휩싸인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좋아하는 사람의 죄는 가벼워 보이고, 싫어하는 사람의 죄는 무거워 보이는 것이다. 또 희망적인 사람에게 미래는 좋은 것으로 보이고, 절망적인 사람에게 미래는 나쁜 것으로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배고파서 온 정신이 음식에 팔려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에게 ‘인간에게는 밥보다 소중한 것이 많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군가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말하는 이는 인간의 파토스를 감안해야 한다.
로고스logos
'로고스logos'는 무엇일까? 로고스는 언어(말, 글)를 의미한다. 말과 글은 최소한의 논리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언어(말과 글)의 존재 이유인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까닭이다. 그래서 로고스에는 '언어'뿐만 아니라 '논리'라는 의미가 있다. ‘에토스-화자’, ‘파토스-청자’로 관계 지어져 있다면, 로고스는 ‘로고스-언어(논리)’로 도식화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로고스는 듣는 이에게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기 위한 논리이다.
이 로고스가 없다면 설득은 어렵다. 고 3 학생들에게 ‘대학은 가지 않아도 된다.’라는 의견을 설득한다고 해보자. 그때 학생들이 물을 수 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어떻게 공부를 해요?” “대학을 가지 않으면 어떻게 취업을 해요?” 이런 질문에 "뭐, 그냥, 어떻게 되겠지”라고 답하면 어떻게 될까? 설득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처럼, 말과 글을 통해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면 설득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