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불편한 이유

헤라클레이도스 ‘변화’

다름이 불편한 진짜 이유

이제 나와 다른 것들이 왜 불편한지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다름은 왜 불편한가?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것은 낯설고, 낯선 것들은 불편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다. 1년 동안 세계일주를 떠났던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매일 다른 사람, 다른 숙소, 다른 음식, 다른 상황을 만났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불편하고 불쾌하기보다 유쾌했고 즐거워했다.


세상을 둘러보면 나와 다른 것들을 즐거움과 유쾌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불쾌함보다 즐거움으로 만나는 이들. 익숙한 물건을 대신 낯선 제품을 사용하며 불편함보다 유쾌함을 느끼는 이들. 이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른 걸까? 그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헤라클레이도스의 통찰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은 변화하기 때문에 같은 것은 없다’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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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름에서 불편과 불쾌를 느끼는 본질적인 이유가 뭘까? 그것은 어딘가에 나와 같음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온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지금 내게 없으니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다. 하지만 그 믿음 허황된 믿음이다. 헤라클레이도스의 말처럼, 모든 것은 변해서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


허황된 믿음은 언제나 우리를 불행으로 내몬다. 생각해보라. 어떤 사람도 팔이 세 개가 아니라고, 다리가 네 개가 아니라고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사람의 팔과 다리는 두 개라는 사실이 삶의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의 팔과 다리가 네 개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팔과 다리가 두 개인 것에 대해 불편하고 또 불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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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에서 유쾌함과 즐거움을 찾는 법


우리는 일찍이 헤라클레이도스가 보여준 삶의 진실로 돌아가야 한다. 세계는 흐르는 만물과 같다. 그래서 모든 것은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세상에 고정된 같음은 존재할 수 없다. 세상 모든 것은 매순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다름’이 바로 ‘같음’이다. 매순간 변화되는 ‘다름’에 의해 ‘같음’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삶의 진실이다. 이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될 때 ‘다름’에서 유쾌함과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


떠드는 친구가 항상 떠드는 사람일 수 없다. 음악을 들을 때는 조용한 친구이며, 내가 힘들 때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이지 않았던가. 동생이 항상 밖으로 나가자고 보채는 사람일 수 없다. 피곤할 때는 집에 쉬는 동생이며, 함께 즐겁게 게임을 할 수 있는 동생이지 않았던가. 아버지가 늘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사람일 수는 없다. 주말에는 함께 축구를 해주는 아버지이고, 내가 아플 때 가장 먼저 달려 와주는 아버지이지 않았던가. 매순간 ‘다른’ 그 모습들이 바로 늘 한결 ‘같은’ 친구이며, 동생이며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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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기' 때문에 '같은' 친구·동생·아버지를 볼 수 있다면,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 유쾌해지고 즐거워질 테다. 그들이 종종 우리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그것 역시 곧 흘러갈 테니까. 또 그네들의 변화(다름) 자체가 바로 내게 너무나 소중한 친구, 동생, 아버지임을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설사, 친구·동생·아버지가 하나도 변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결코 같지 않다. 그들을 만나게 되는 바로 ‘내’가 매순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모두 그대로 이더라도,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모든 것이 변하게 마련이다.


이렇듯 나도 세상도, 모든 것은 변한다. 나와 완전히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나조차도 흘러가는 강물처럼 변화하게 되니까 말이다. 이러한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될 때, 달라지는 나와 달라지는 세상(친구, 가족, 사물)의 교차점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 기쁨을 느끼게 될 때, 우리는 나와 다른 것(친구, 동생, 부모님 더 나아가 외국인, 장애인, 성소수자, 난민 등등)들을 조금씩 더 긍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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