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코나투스'
우리는 중독된 것일까?
유튜브, 게임, SNS, 쇼핑. 우리가 즐기는 것들이다. 그때 세상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너 그거 중독이야”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는 것. 한 참 재미에 빠진 게임을 하는 것. 멋진 장면을 공유하고 싶어 SNS을 하는 것. 백화점을 돌며 쇼핑을 하러 가는 것. 이런 모습들은 정말 중독인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중독이 무엇일까? 중독은 다채로운 세상을 오직 두 가지로만 나누게 된 마음 상태다. 중독된 대상과 그 나머지 세상. 술에 중독된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는 분명 가족, 친구, 직장, 취미 등등 다채로운 세상을 산다. 하지만 그가 술에 중독되면 그 다채로운 세상은 오직 두 가지로만 구분된다. 술과 술이 아닌 것. 이런 마음 상태가 바로 중독이다.
그래서 중독은 병적 상태다. 중독의 사전적 의미가 이를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 어떤 대상을 지나치게 탐닉하게 되면 어느 순간, 탐닉의 대상과 그것 아닌 세상 구분되는 중독의 상태가 된다. 이것은 분명 병적인 상태다. 중독된 이는 가족, 친구, 취미가 같은 소중한 것들조차 모두 의미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중독된 이에게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눈에는 소중한 모든 것들이 중독된 이에게는 그저 술이 아닌 것들일 뿐이니까 말이다. 지금은 탐닉할 것들이 도처에 널린 시대다. 그러니 아마 적지 않은 이들이 중독되었거나 아니면 중독으로 치닫고 있을 테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이 질문은 중요하다. “중독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독은 ‘코나투스’의 발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스피노자에게 들어보자. 스피노자는 서양 철학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철학자다. 그는 「에티카」 「신학정치론」 등의 저서를 통해, 여전히 신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17세기에 인간을 구속하는 것들 비판하며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를 돌려주려 애를 쓴 철학자다. 스피노자는 누구보다 삶을 긍정하는 철학자였다. 중독만큼 삶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것도 없으니, 중독에 관한 답은 스피노자에게 듣는 것이 좋겠다.
먼저 스피노자가 중독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알아보자. 놀랍게도, 스피노자라면 중독을 부정적인 행동으로 간주하기보다 자연스러운 행동을 볼 테다. 의아할 수 있다. 유튜브, 게임, 쇼핑, 술, 마약, 도박에 중독되어 탐닉하는 행동들이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말이다. “중독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스피노자는 이리 답할 테다. “중독은 코나투스의 발현이라네.” 스피노자의 난해한 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코나투스’라는 개념을 알아보자.
“각각의 사물은,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한, 자신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중략) 각각의 사물이 자신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는 노력(코나투스)은 그 사물의 현실적 본질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에티카」 스피노자
스피노자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자신의 존재(돌멩이, 씨앗, 나무, 인간 등)를 끈질기게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이를 쉽게 이해하려면 물리학적 ‘관성’을 생각하면 된다. 관성이 무엇인가? 정지해 있는 물체는 (외력이 없다면)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외력이 없다면) 계속 움직이려는 성질 아닌가. 이처럼,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존재들의 이런 관성을 ‘코나투스’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코나투스
“각각의 사물이 자신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는 노력(일종의 힘)이 바로 ‘코나투스’다. 돌멩이의 코나투스는 무엇일까? 작은 자갈들로 부셔지지 않고 돌멩이로 존재하려는 노력(힘)이다. 씨앗의 코나투스는 무엇일까? 땅속에 묻혀버리지 않고 활짝 핀 꽃으로 존재하는 노력(힘)이다. 나무의 코나투스는 무엇일까? 줄기가 꺾이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로 존재하려는 노력(힘)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코나투스는 무엇일까?
“이 노력은(코나투스)이 정신에만 관계 되어 있을 때는 의지라고 불리지만, 그것이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되어 있을 때는 충동이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충동은 인간의 본질 자체일 뿐이며, 그것의 본성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인간의 보존에 기여하는 것들이 나온다.” 「에티카」 스피노자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의 코나투스는 ‘의지’와 ‘충동’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본질 자체이며, 이것들로 인해 인간의 보존, 즉 삶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이는 어려운 말이 아니다. 목이 마른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때 우리는 물을 갖고 싶다는 ‘의지’와 물을 마시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이 ‘의지’와 ‘충동’을 통해 물을 마실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가 자신(인간)을 보존 즉,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목이 마를 때, 물을 가질 ‘의지’와 물을 마실 ‘충동’이 없다면 인간은 죽게 된다.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의지와 충동, 그것이 바로 인간의 코나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