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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다고 만나보고 싶은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들만의 가상 세계에서는 실제로 만나거나 하는 것은 금기시된 듯 보였기도 하지만, 적당히 서로에 대한 환상을 가진 채 속마음을 떠드는 것이 이 방의 존재 이유인 듯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를 며칠 다녀온 사이 방 사람들끼리 갑자기 서로 만남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설명하기 힘든 배신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아니 근데 이대를 그렇게 뻔질나게 다녔어도 그렇게 맛있는 칼국수 집이 지하에 숨어 있는 줄은 몰랐구만.’
어느 일요일 저녁에 열린 채팅방에서 그들은 어제의 만남을 되씹고 있었다.
‘아니, 이러기 있습니까. 그래도 이 방 고정인데 나만 빼고 그렇게 번개를 하다니…’
‘아니 우리가 무슨 연락처를 서로 아는 사이유? 운 안 닿아서 소식 못 들었음 그만이제. 다음번엔 재수 좋게 참석하기요. 어제 만남은 참으로 재밌었당께.’
그 후로도 그들은 부정기적으로 누군가 제안하면 갑자기 만나기도 했다. 야밤에 라면 번개를 신촌에서 열기도 하고, 비 오는 토요일 오후엔 세 시간이나 온라인에서 수다를 떨다가 급작스럽게 종로 빈대떡 번개를 하기도 했지만 대만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녀가 궁금했지만 어차피 북적이며 만나봤자 그녀를 제대로 알기는 힘들 테니까.
그날은 날이 좋았다.
적당히 추운 날씨는 해 마저 퇴근하고 나면 사람들을 더욱 허하게 만들어주니까. 그런 날은 누구라도 만나 내가 혼자가 아님을 느끼고 싶어 지니까. 그래서 그렇게 지켜만 보던 그녀와 국수 한 그릇을 같이 했으니까. 석 달쯤 전에 그녀가 많이 궁금해지기 시작할 무렵, 지폐를 가져가 500원짜리 새 동전으로 죄다 바꾸었다. 언젠가 그녀를 만나면 줘야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갑자기 인생이 심심했다고 해두자.
사람들은 커다란 바닷속에 수없이 나눠 담긴 연못에서 태어나 그 연못 안에서 대부분 살다 또 연못 속에서 죽는다. 우리는 다른 연못의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만나지만 그들과 섞이는 것은 하나의 이벤트이거나 뉴스거리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익숙한 그 연못 안에서만 머무르려 하는 것이다. 굳이 내가 살아온 연못을 말하자면 그렇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잘 사는 것도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대부분이 다 그러니까. 예쁜 데다 집안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별로 모나지 않은 그런 규수들을 흔하게 보아왔다. 그들은 사는 곳이나 또는 같은 동료 중에 자주 섞여 있다. 미모와 학벌과 직업 등은 아예 닫아 놓은 내 마음의 문이 열리는 데에는 별 힘을 쓰지 못했다. 내가 그 추운 날 굳이 처음 보는 여자와 국수를 먹으러 간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나를 웃기는 사람은 그간 몇 없었기 때문이다… 울지 않기도 고단한 인생에 웃음은 내겐 누군가의 람보르기니만큼이나 비싼 그것이었으니까.
“너무 일에 치여 살던데… 그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바엔 일을 좀 쉬면서 재충전하고 아님 다시 열정을 불태울만한 새 불꽃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텐데.”
“… 장 대만 씨. 잘 살죠? 살림살이 넉넉하죠? 태어나서 돈 때문에 걱정해 본 적 없죠? 아르바이트해 본 적 없죠?”
“응…. 굳이 생각 안 해 봤는데 그런 것 같네.”
“그러니까 그런 한 대 딱 맞을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도 하지. 쉬면… 그럼 스트레스 안녕? 그런 팔자 좋은 소리를… 관두는 순간 지금은 없는 또 다른 스트레스들이 나를 아주 그냥 잡아먹을 거라고요. 다른 열정? 고등학교를 다시 가지 않는 다음에야… 불꽃도 배가 불러야 다시 지펴 보던가 하지. 대부분의 대학 졸업한 이십 대 대한민국 인간들은 알아서 밥벌이를 해야 한다고요. 안 그럼 이제껏 키워 준 것도 모자라서 밥벌이도 못한다고 부모한테 얼마나 구박받는데… 그러니까 오늘 국수는 잘 사는 장 대만 씨가 쏘세요.”
마치 모르고 있던 이야기들을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또 그렇다고 나는 다른 연못에 살고 있노라 당당하게 꾸짖는 이를 흔히 보는 것도 아니었기에 신선했다. 대부분은 같은 연못에 살고 있는 양 굴거나, 다른 연못의 사람들을 흉내 내는 인간들을 만났다. 또는 처음부터 정해진 그 연못이 불공평해 잔뜩 화가 난 사람들이라던가…
“대부분의 우리는 참 열심히 살아요.
그게 뭐 다른 별 세상으로 가고 싶어 그런 줄 아나요? 속해 있는 이곳에서 좀 더 안전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열심히 살면 안 끊어지는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오고… 이런 걸 믿는 게 아니라… 적어도 가라앉지는 않으려고…”
신기한 사람이었다.
냉소적이면서도 낙천적이고 똑똑한데 어리숙하기도 하고, 예쁜데 예뻐 보이려 하지 않았다. 보통은 하기 싫어하는 없는 소리, 아쉬운 소리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그렇다고 진짜 없어 보이진 않는다. 그녀와 얘기를 하다 보니 나는 생각보다 부자고, 가진 게 많고, 이미 태어나기를 재수 좋은 편에서 태어났나 보다. 남보다 많이 일찍 떠나야 하는 것 말고는 그녀 말대로 선택받은 그런 인생에 속해 있나 보다.
“더 가졌으니 내놓으란 건… 북조선 사고방식 아닙네까?”
“아니죠. 나는 장 대만 씨가 이 국수를 쏘면 많이 고마워할 거예요. 공산주의는 남이 내놓는 호의를 당연한 듯 냠냠하는 거죠. 난 그쪽 사상은 아니고…”
만나보니 여자가 조금 더 좋아졌다.
반듯한 여자다. 그리고 여자는 나를 더 자주 웃겼다. 웃고 싶을 때면 그녀를 찾게 되었다. 일단은 어쨌거나 심각하고 싶지 않았다. 더 멀리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이기적이지만 그녀도 지금 나와 같이 행복하면 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아마 제주도에서 전화를 받을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더 깊은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 지랄 맞은 유전의 끝은 간암이다.
병을 물려받은 수재들이 대를 이어 줄줄이 의사가 되어도 끊지 못하는 고리. 그것은 저주일지도 모르는 유전이다.
“간을 아마 처음부터 진공 포장해서 멸균 박스에서 보관했어도 이 집안 간은 썩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니까!”
언젠가 삼촌이 분노에 차서 절규했듯이…
“그런 거 있죠.
난 지방 출신이라 모의고사 점수보다 훨씬 더 아까울 정도로 넉넉히 남기고 안정적인 학과를 지원했어요. 물론 그 안정적인 학과라는 것은 합격을 하기에 충분히 만만하면서도 4년 후 학교를 나설 때 당연히 밥 벌이는 보장되는… 그런 것이죠. 불공평하다고 화를 낼 구석은 얼마든지 있었어요. 나도 우리 과 정원 사십 명중 열명이나 있었던 그 서울 출신들처럼 강남 8 학군에 엄마가 학원이며 과외며 모시고 다녔더라면 서울 의대 그다지 멀지 않았어요. 그렇게 따져 보려면 인생에 짜증이 나는 부분이 셀 수도 없겠지만 적어도 그게 나보다 나은 형편인 다른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란 것쯤은 알아요. 억울하다고 하는 말은 적어도 ‘잘못한 누군가’가 명백하게 존재해서 따져보기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에만 쓰는 거니까. 억울할 것도, 불공평할 것도 없는 거죠. 인생은 완벽품이 절대 나오지 않는 썩은 공장에서 나오는 불량품들이니까. 내가 갖지 않은 불행을 누군가는 지고 나오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웃었다.
그녀는 그렇게 나를 웃긴다.
‘인생은 완벽품이 절대 나올 수 없는 썩은 공장에서 가지가지 별로 쏟아지는 불량품들이라니… ‘ 어쩌면 이렇게 딱 맞는 소리를 이제 겨우 스물다섯에서 여섯쯤 되려는 여자가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말은 희망을 주진 못해도 조금 가볍게 체념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녀는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오빠, 내가 기분 좋을 때 미리 비결을 알려주는데 말야, 혹시 나한테 뭔가 엄청 잘 못해서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거기 청담동 쪽 뒷골목에 무궁화 알지? 거기서 꽃등심이랑 차돌박이를 실컷 먹여. 그럼 세상에 용서 못할 일이 없는 최고 너그러운 김 대리를 만나게 될 거야.”
“그렇게 박봉이라고 투덜대면서 언제 그 맛집들은 다 가 본거야? 부자인 나랑 단골집들이 너무 겹치는데?”
“생각보다 무식하네? 그래서 앵겔이라는 똑똑한 인간이 그 근간을 제시했지. 엥겔지수를 보면 대충 사는 형편이 파악되도록. 나의 앵겔 지수는 엄청나. 지수대로 부자라면 난 재벌이여.
… 그것은… 뭐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내 생각엔 그 밥 값 좀 더 아껴 자신을 욕구불만으로 만든다고 뭐 크게 형편에 차이가 날 것 같지 않거든. 그래도 어차피 곧 배 꺼질 텐데 제일 아끼기 쉬운 부분 아니냐고? 아니. 먹고 싶은 것을 참아가면서까지 사는 건… 뭐랄까… 제기랄, 어차피 내려올 텐데 등산은 왜 하냐? 어차피 결혼은 한 명 하고만 하는 법. 대부분 죽고 못살게 좋아해 봤자 인연 아니라면 속만 썩어 문드러지는 이별이 수순인데 사람은 왜 만나냐? 어차피 똥 쌀 건데 밥은 왜 먹냐? 등등의 아류작을 통하여 나의 지론을 대충 이해하기 바라.”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많은 부분의 고찰력에서 그녀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단순히 긍정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바뀌는 사실이 없다 하더라도 그녀를 만난 이후 내 생활은 분명히 좀 더 재미있어졌다…
어차피 헤어질 건데 사랑은 왜 하냐고 물을 거면 어차피 다섯 시간 후에 또 배고플 텐데 밥은 왜 처먹냐의 해답을 먼저 찾기 바란다고 그녀는 말할 것이다. 몇 번 말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유독 예쁘게 빛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내일은 직접 밥을 해 먹일 생각이다.
메뉴는 정했으나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는 아직 세우지 못했다. 아니 해야 하는지도 … 말하지 않는 것과 거짓말은 같지 않지만, 솔직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어 자꾸만 망설이게 된다.
병원을 쉬기로 했었을 때, 대체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다가 ‘시간 아까워서 안 했던 혹은 못 했던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강제로 기상하는 것 말고 그저 아침 수영을 즐기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기를 해봤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시간을 죽이느라 한다는 바보 같은 온라인 게임들을 해보기도 했고, 뉴스 이외의 ‘쓸데없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느라 소일을 해보기도 했다.
재미가 없다.
결국 하던 대로 하게 된다. 시험을 목표로 두고 무언가를 성취하기. 그래서 생전 관심도 없었던 요리를 배워봤다.
칼잡이는 다 통하기라도 하는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쉽게도 늘어갔다. 결국 병원은 쉬기로 했지만 눈 떠서 잠들 때까지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고 있게 되었다.
“아줌마, 내일 새벽 장 보실 때 제 것도 좀 같이 사다 주세요. 아침에 본가 들러서 가져 갈게요. 참복 아주 잘생기고 싱싱한 놈으로 한 네 마리만 잡아주시고 멍게, 해삼… 참, 청각이랑 톹도 보이면 구해주세요. 네. 내일 아침에 들를게요.”
내일 맛있는 복요리를 해주기 위해 미리 주방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정리하고 냉장고 밖에 미나리를 비롯해 아침에 장을 봐야 할 목록을 붙여 놓았다. 나에게 꽉 찬 내일이 아직 남았다는 것을 희망으로 삼기 위해 갖게 된 오래된 습관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떠나고 난 후부터… 내일을 미리 구상을 해두는 것은 내가 내일도 살아 있을 것이라는 의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