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닌데… 왜?”
“그 슨상님이 카운터로 전화했다. 누나 여기 있냐고… 핸드폰도 안 받고 집전화도 안 받는다고… 있으면 다시 콜백 해달라고 고급 메세지 남기셨다.”
그제야 가방 안에 묻어둔 핸드폰을 꺼내 보니 부재중 전화가 꽤 와 있다.
“오빠, 병원으로 간 거 아냐? 전화할 경황이 없을 줄 알았어…”
“내 어쩐지 나 떼 놓고 둘만 어디로 사라지지 싶었지. 작은 어머니가 좀 안 좋으신데… 고비는 넘겼어. 원래 심장이 안 좋으셔서… 이번엔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착하게 바로 전화했어. 집에 안 가니?”
“응 갈 거야. 잠이 금방 안 올 것 같아서 만화방에 들른 거야. 아 맞다!! 오빠가 ‘여왕님, 여왕님’ 샀다며?”
“에이… 김새게… 후배가 말했구나? 깜짝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혹시 내일 시간 되니?”
“음… 없다고 하고 싶지만… 내일 나는 아무 계획이 없네… 시간은 많고.”
“굿. 그럼 내일 오전 9시에 데리러 갈게. 그런 줄 알고 있어.”
“뭐 할 건데?”
“뭐 할 건지가 중요한 사이야? 뭘 하든 이번엔 보너스 인간 없이 우리 둘만 보는 걸로. 알았지?”
“알겠어. 내일 9시에 보는 걸로…”
다른 인간 없이 둘만 본다니 바로 심장이 펌프질을 시작했다.
“뭔데, 나도 내일 시간 많다.”
“나도!”
도움 안 되는 선배 후배 둘 다 본인들도 시간이 남아돈단다.
“그럼 잘 됐네. 같이 만나라.”
“아 진짜?”
“아니, 둘이 만나라고!”
장 선생이 전화를 한 후로 갑자기 뒤죽박죽이던 머리도 차분해졌다. 최면에 걸렸다는 것을 안다. 이성이 마비되고 지금 행복한 것에 집중하게 되는 최면… 그리 될 줄 몰랐냐고, 누구에게나 보이는 결말이었건만 넌 그렇게 둔했냐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객관적인 제삼자들이 정작 잊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랑에 빠졌을 때 인간의 뇌를 마비시키는 이런 최면이다.
“… 숙모… 어떠세요.”
“괜찮아. 조금 전에 세척하고 검사 마치고… 잠이 든 건지… 기절을 한 건지…”
수면등만 켜진 어두컴컴한 입원실에 덤덤한 뒷모습으로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올해만 세 번째… 숙모가 갑작스럽게 입원을 한 것 말이다. 네 살 어린 사촌동생이 수련의 생활 중, 오랜만에 집에 들렀을 때 아들의 손을 잡다가 처음 쓰러졌다. 아토피라 긁은 거라고 아들이 변명을 했지만 그게 징조라는 것을 아는 그녀는 마침내 사형집행을 선고받은 사형수처럼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한참을 깨지 않았다. 이후 두 번째다. 만성 우울증을 겪는 그녀가 수면제니 안정제를 처방받는 것은 쉬우니까.
“걱정 마라.
항상 그 정도로는 죽지 않을 정도만 삼키는 모양이니까… 갖다 바치겠다는 생명도 안 받아줄뿐더러 살겠다는 생명도 안 도와주는 게 원래 법칙이니까… 대체 이 늙은 몸은 언제 거둘 작정인지… 성모님…”
호흡도 맥박도 옅지만 정상이다. 숙모의 상태를 잠시 점검하는 손자 옆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할머니는 이내 묵주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 집안에 서린 유전병도 선택이 아니었듯, 종교도 이 집안에선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예외 없이 그렇게 태어나 얼마 안 되어 세례들을 받았는데 특별히 아끼시는지 하나 둘 빨리 떠나가는 것이 숙명이다. 남보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받아들일 무렵 결정해야 했다. 남보다 짧게 살아야 하니 몇 가지는 생략해야 하는 것으로… 그래서 ‘사랑’을 빼기로 했었다…
“김 집사 말로는 요즘 누구 만난다지? … 결혼할 생각이니?”
“절대 아닙니다.”
“그 정도로 좋은 것도 아닌데 왜 멀쩡한 병원까지 휴직하고 기껏 연애질이니.”
숙모가 왜 누웠는지를 할머니는 잊은 걸까. 아니면 유전병이 언제 도질지 모르는 장손이라도 혼인은 했으면 싶은 지극히 이기적인 할머니의 마음인 건가. 다른 이 아프게 할까 봐 막내딸은 말렸던 그녀이면서도…
가만히 할머니의 깊은 주름을 세듯 가깝게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다.
그녀의 인생은 어쩌면 누구보다 고단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가시 돋친 말을 가까스로 삼키고 천천히 말했다.
“그 정도로… 좋기 때문에 결혼은 절대 생각도 안 하는 중입니다.”
막힌 길이란 것을 알면 안 가야 맞겠으나 어렵게 나중에 후진해 빠져나와야 한다손 치더라도 일단 가보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언젠가 막힌 그 벽을 보고 울어야 할지라도…
“… 말… 했니?”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진 모양을 하고 있는 손자에게 잔뜩 말라 갈라지는 음성으로 늙은 그녀가 묻는다.
“끝까지 안 할 겁니다… 어차피 헤어질 각오는 하고 만나는 거니까요. … 왜 헤어지는지도 그녀는 모를 예정이니까요…”
아무 말도 없이 안락의자에 깊이 몸을 묻더니 눈을 감는 할머니 몸에 담요를 고쳐 덮어주고 병실을 나섰다.
얼굴을 보고, 밥을 먹고, 같이 여행을 갔다.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그녀는 모른다. 나의 세월은 한 달이 아니다. 정확히 이미 일 년 하고도 일곱 달이 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약하게나마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언젠가 오게 될 ‘그것의 저주’를 최대한 덤덤히 잘 맞았다. 그러나 묵묵히 받아들이자 모든 것이 시시해졌다.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것은 무엇보다 가슴을 뛰게 하지만 더 잘 살리기 위해 쉬지 않았던 그 많은 공부도, 없는 시간에 짬만 나면 들렀던 서점 기행도, 훌쩍 혼자 떠나던 여행도… 결국 지겹도록 혼자일 것인데 뭘 하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늘 혼자였다.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나 때문에 힘들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정작 철저히 혼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다가오자 오히려 혼자인 것이 진저리 치게 추웠다.
“이 자식, 수련의 1년 차가 채팅 따위를 할 시간이 다 있고… 참 여유 넘쳐. 그치?”
“아… 죄송합니다. 회진 끝나고 잠시 한다는 게 그만…”
“뭔 얘기하는 거니?”
“아… 진짜 영양가 없는 잡담이나 하는데요… 사실, 인간이 좀 그립거나 딴 세상 이야기 좀 듣고 싶거나 할 때 들어가곤 합니다만… 이 방장이 회사원이거든요. 별 거 아닌 이야기도 너무너무 웃기게 해요… 사실 이 방은 직장인 방인데요, 상사 씹는 이야기 듣고 있음 뭐랄까… 동지애 같은 것도 막 느껴지고 남의 이야기는 우습기도 하고… 어쨌건, 죄송합니다. 저는 그럼 일 찾아 떠나겠습니다.”
‘뭐야 이게… 방장 이름이… 오백 원만?
방제하고는… 여의도에 폭탄 떨어지면??’
일 년 차 동수가 미처 닫지 않고 둔 채팅창에 슬며시 끼어든 것이 그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하이, 방가’
건성으로 인사를 받아주는가 싶더니 이내 그들만의 이야기에 다시 집중하고 있었다. 굳이 끼어들 생각도 없고 하여 그들이 떠드는 것을 첫날은 그저 구경만 했었다.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그러다 병원을 쉬게 되고 나서는 더욱 그 방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방장 기분에 따라 방은 점심시간에 잠깐 열리기도 하고, 저녁 늦게 열리기도 하고 또한 오밤중에 열리기도 하며 어떤 주말은 내내 열려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참 바쁘기도 하지만 참 심심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별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희한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 어제는 왜 방이 없었냐면은 친구 둘이 하도 졸라서 강남 클럽을 좀 갔다 왔거든. 근데 나는 그런 데서 부킹 하는 애들이 제일 웃긴 게, 대체 언제 또 볼라고 그렇게 열심히 호구조사를 해대니?’
어느 일요일 채팅창이었다.
토요일 밤에 한참을 기다려도 방이 열리지 않아 잔뜩 조바심이 난 터에 일요일 아침부터 기다렸건만 오후 느지막이 열린 방에 겨우 들어가자 이미 어제 왜 방이 개설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취조에 누군가 대답을 하고 있었다.
‘방장은 어디 가고 왜 그쪽이 설명을..?’
컴퓨터라곤 차트 기입하고 처방전 내릴 때만 쓰다 보니 영타가 훨씬 익숙해서 저 문장 하나 치는데 한참이 걸렸다.
‘인어가 방장이잖아. 닉네임 위에 모자 뒤집어쓴 거 안 보이유?’
‘아니… 맨날 ‘오백 원만’이라고 되어 있다가… 바뀌었길래..’
‘뭐여, 닉넴 아무 때고 바꿀 수 있는 거구만. 아니 그럼 지금까지 닉넴 바꾸는 법을 몰라서 그렇게 주구장창 한 이름만?’
동수의 닉네임은 독창적이기 짝이 없는 ‘똥수’로 마음에 안 들지만 바꿀수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해 그대로 썼던 것이 창피할 지경이다. 바꿀 수 있는 김에 바꿔 본다. ‘911’.
‘저… 닉네임 바꿔보았습니다.’
채팅창의 사람들은 별로 참여하지 않는 대만을 굳이 챙기지 않았다. 피식 웃음이 난다. 갑자기 자유로움을 느꼈달까. 이래서 사람들이 온라인 세상에 점점 빠져드는구나. 얼굴을 모르고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끼리 그곳에선 별 인사 나누지 않고도 금방 친해지고, 금방 모른척 하고, 또 서로에 대해 적당히 궁금해했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예의에 얽매이지 않고… 그래. 이해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바깥세상에서 그토록 신경 쓰던 체면이던, 예의던 그 무엇이던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벗어버릴 수 있는…
그들은 그곳에서 자유롭다. 아마 이곳에서 친해져도 그다음 날 내가 영영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 그다지 그들은 상처 받지도 슬프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친했으면서도 또한 서로를 제대로 알아본 적 없으니.
‘그래서, 어제 좀 멋지던가, 물은?’
방에서는 여전히 어젯밤 방장의 클럽 기행기를 관심 있어하고 있었다.
‘토요일 밤이 그렇지. 고기가 많지만 물은 탁하잖아. 어쨌건 내가 우습다고 생각하는 건 말야, 그렇게 부킹으로 만나서 왜 그렇게 끈질기게 나이며 사는 곳이며 하는 일을 캐대느냐 말이지. 그래서 난 어젯밤엔 검정고시를 방금 마친 중국집 배달 소녀였지.’
‘흠… 배달인들의 직업을 폄하하는 겁니까?’
회사원이 직업을 속이고 부킹 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해서 잠깐 참견을 해보았다.
‘아니요??
내 직업이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데 그렇게 곡해하지 말기요. 난 그저 의미 없는 그런 만남 와중에 인간들의 편견에 관련한 심리테스트를 해 본 것뿐이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말야, 우리가 여기 온라인에서 만나는 것만큼이나 그런 부킹을 통한 즉석 만남 또한 허상이라는 거야. 어차피 오늘 보고 안 볼 사람들이 어쩜 그리 배경에 집착하는지…
그래서, 내가 가난한 중국집 배달 소녀랬더니 어제는 이차로 신당동 떡볶이나 한 사발 같이 하자는 주접남이 하나도 없더란 거야. 아님 하룻밤 데이트를 하더라도 다 갖춘 여자를 원하는 건지…’
같이 헛소리를 나누는 날이 쌓일수록 이 여자가 궁금했다. 어느 날 밤에는 이따위 일벌레로 살 바엔 차라리 자가 분식 가능한 아메바나 짚신벌레로 살고 싶다는 둥, 미토콘드리아라면 아무리 작아도 꼭 필요한 존재이기나 할 텐데… 이런 소리들을 들어 놓는다. 적당히 공부 잘하고 적당히 보수적인 교육을 받고 죽지 않을 만큼의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향해 대놓고 삿대질을 할 용기는 없는 흔해빠진 모범생. 그녀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