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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le Jun 23. 2024

좀 더 보여주면 그만큼 깊어진다…

(5)

원래 인간이 모이는 곳은 다 이 모양이다. 

자리 비우면 나는 오징어가 되어 씹히겠거니 해야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맞다. 장 대만을 찾느라 안 하던 채팅방 백주대낮 개설도 감행했지만 이놈의 백수는 공사가 다망한 지 보이질 않았다. 실망을 뒤로하고 나머지 멤버들과 수다에 열을 가하고 있는데 한 시간 남짓하던 상무 발표회가 끝이 났는가 우르르 간부 아저씨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작별 인사도 없이 바로 방을 폭파시킨다. 그래도 다들 이해한다. 우리는 다…. 월급쟁이다.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던 배불뚝이 아저씨들이 다시 일사불란하게 한꺼번에 빠져나간다. 놀라울 것 없다. 이들은 수고로왔던 토요일 회의 하나를 마치고 주로 전복 삼계탕이나 한정식 집에 앉아 낮술이라는 것을 청할 참인 것이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쯤 슬슬 일어나면 되겠다 생각 중인데 얼굴이 토마토처럼 상기된 한 대리가 쿵쾅거리며 들어섰다. 

아 맞아. 경미 씨… 경찰서… 일단 그것까진 듣고 가야 쓰겠다.


한 대리는 넥타이를 풀어헤친 채 자리에 털썩 앉아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흘린다. 뭐 대충 그 여인에게 술과 관련하여 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쯤은 상상이 간다. 이번에는 무슨 짓을… 


대충 40대 이상 간부급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마지막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후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우르르 한 대리 근처로 집결한다.


“뭐래? 왜 경찰서 간 거래요?”


“참 나…

그 아가씨가 어제 외박을 하셨더라고. 것도 노천에서…”


“네??? 이 엄동설한에?? 안 죽었어요??”


진심으로 누군가가 안 죽었냐고 외치는 소리가 결코 호들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 다행히도…

그러니까, 어제 그렇게나 데려다줄 필요 없다고 딱 거기서 내려서 두 발자국만 걸으면 자기 집이라더만, 집에 안 가고 가던 길에 있던 가구점 바깥에 내놓은 침대에서 잔 거야. 가구 덮는 천막 안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아침에 아저씨가 그거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더라구. 근데 문제는… 경미 씨가 침대 한 켠에다가 토를 해 놔서… 아저씨가 그 침대 경미 씨가 사야 한다고… 결국 가서 세탁비에다가 더 얹어 드리고 합의 봤다니까. 집에는 죽어도 알리면 안 된다고. 집에 알리면 혀 깨물고 자결할 거라더라? 알고 보면 자식을 남보다 모르고 있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 몰라.


그나저나… 힘들어 죽겠는데 우리도 어디 가서 탕수육에 빼갈 한 잔?”


“그건 뭐 아저씨들끼리 땡기시고요, 저는 피곤하므로 이만…”


“아니 자꾸 이렇게 샐 거야? 김 대리?”


“… 아니 가겠다는데 무슨 공산주의야 뭐야, 왜 자꾸만 집단생활을 강요해?”


이건 내가 한 소리가 아니다… 내 마음과 똑같긴 하지만. 가만… 그러면 누구? 하고 돌아보는데… 그 남자가 뜬금없이 서 있다. 너무도 말쑥하게.


“웬만하면 밑에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말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서… 오늘 우리가 좀 바쁠 예정이거든. 아저씨들 나가는 거 보고 올라왔지. 가지, 김 대리. 어제 다시 보자고 했을 때 별 거부 없었던 거 맞지? 아 어제가 아니고 오늘 새벽이라고 해야 하나?”


이 남자가 굳이 안 해도 될 부연 설명을 굳이 하고 섰다. 그나저나 정말 예상 밖이다. 이렇게 나타날 줄은 몰랐다.


“이 백수 의사가… 아예 우리 회사 취직을 해라. 회장이 특이한 거 좋아하니까 의대 출신이라고 그냥 바로 특채할지도 몰라.”


가만 보면 세상사가 다 그렇다.

항상 적은 내부에 있다. 분명 혈연관계인데 사촌끼리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 한 대리는 대만 씨의 재출현이 영 탐탁지 않다.


“보셨죠? 한 대리님. 저 바빠요. 그럼 이만…”


“아, 뭐야 진짜… 아까 경찰서에서 바로 퇴근할 수도 있었지만 김 대리랑 놀라고 다시 종로까지 왔단 말이다. 이러기야 진짜?”


“자꾸 그런 식으로 희한하게 고백하지 마시고요. 월요일에 뵙는걸로다가 해요. 우리.”


어차피 배는 떠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징징대는 한 대리를 뒤로 하고 엉겁결에 남자를 따라 무작정 택시를 타고 있다.



-뭐 먹을래?


-네가 먹고 싶은 거면 뭐든 좋아.


-그래도 먹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냐, 말해 봐.


-난 진짜 안 가려. 네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 좋아.


-그래 그럼. 삼겹살 먹자!


-아… 그것 보단 닭갈비가 더 낫지 않아?


….

아니 그러니까 처음부터 에너지 낭비 안 하게 내가 물었을 때 딱 잘라 닭갈비 먹자고 하지 대체 왜 너그러움을 가장한 우유부단을 잔뜩 부린 후에야 본심을 꺼내느냐 말이다…라고… 주도성 없는 남자들을 지겨워해 온 나이지만 이 남자는 좀 당황스럽다. 주도를 해도 너무 한다. 너무 혼자 달려대니 희한하게 정신없이 끌려다니게 되는 경향도 있다. 혼자 이런 생각들로 살짝 억울해하고 있는데 남자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든다.


“기사님, 김포공항으로 좀 부탁드립니다.”


공항? 아니 왜??

가끔 이런 경우 있다.

너무 놀래서 속으로 소리 지르면 미처 말하지 않았다 해도 상대가 듣는 경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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