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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준쌤 Feb 11. 2024

다시 번아웃이 찾아오더라도

2023년 2월 다시 번아웃 증상이 찾아왔다. 예전에 번아웃 증상이 나아져서 일상으로 잘 돌아간 경험이 있지만,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번아웃 탈출 워크숍을 진행했던 코치가 또다시 번아웃이 찾아왔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이 얼마나 웃긴 아이러니인가. 마치 직업상담사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불안해하고, 앞으로 어떤 직업을 해나가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기업가정신을 주제로 강의를 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과 유사했다.


  나는 그렇게 또다시 번아웃 증상을 겪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감도 없었고, 용기도 없었다.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까지의 삶과 시간들이 무의미해 보였다. 꿈도 잃고 현실도 잃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아무런 발길도 없는 고립된 섬처럼 나는 세상과 단절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을 만나기도 싫었다. 초라한 내 모습과 우울감과 번아웃 증상을 겪고 있는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피로감이 크고 무기력해지니 다시 오전이 사라진 삶을 살았다. 2016년에 겪었던 '오전이 사라진 삶'을 다시 살게 될 줄이야.


  유튜브에서 번아웃, 우울감, 불안, 두려움에 대한 영상을 봐도, 심리학 책을 뒤적거려 봐도 번아웃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늪과 같았다. 이 늪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늪의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그래도 다행인 건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먹으려고 했다는 것과 샤워를 하고 최소한 30분 이상은 하루에 걸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우울감과 무기력, 번아웃이 클 때는 씻고 먹고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다는 걸 알기에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흙탕물을 계속 젓는다고 해서 흙탕물이 맑은 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번아웃은 빠르게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단시간에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번아웃을 인정했다. "그래, 나 번아웃이다. 나 지금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고백했다. 그리고 일을 줄이고, 몸과 마음을 최대한 쉬려고 했다. 돈이야 뭐 다시 벌면 되지! 모아놓은 것도 있잖아 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집중해서 읽을 수 있게 됐다. 집중력이 조금은 돌아온 것이다.


 독서를 하면서 큰 위안을 주고, 바닥을 딛고 일어설 힘을 준 문장들을 발견했다.


“불안감은 우리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도우려는 신호이다.”

- <무기력의 심리학>


 “당신은 우울증을 당신을 망가뜨리려는 적의 손아귀로 보는 것 같군요. 그러지 말고 당신을 안전한 땅으로 내려서게 하려는 친구의 손길로 생각할 수 있겠어요?”

-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봐주지 못했기에 무기력함과 번아웃 증상이 찾아온 것이었다. 제대로 봐주는 게 먼저였다. 흙탕물을 더 이상 휘젓는 게 아니라 가만히 관찰하고 마주한다면 흙탕물의 흙은 가라앉게 되고 물이 조금은 맑아진다.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감정과 생각이 나의 일부분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조금은 움직일 힘이 생겼다면, 맑은 물을 부으면 된다. 맑은 물을 계속 붓는다면 흙탕물은 조금씩 맑아진 물로 채워질 것이고 안에 있던 흙이 조금씩 빠져나간다. 맑은 물은 사람마다 의미하는 게 다를 수 있다. 나는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사람들과 안전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고립에서 연결로 가는 통로를 만드는 게 내게는 맑은 물이다.


  누군가는 글쓰기일 수 있다. 춤추기, 산책하기, 달리기, 반려동물과 시간 보내기, 반려 식물 가꾸기, 요가, 명상 등 혼자서 하는 활동뿐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이고, 온전한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시간을 일상 속에서 확보하여 보내는 것이다.


  번아웃은 누구에게나 온다. 나는 이제 인생 총량 에너지의 법칙을 믿게 되었다. 무한대로 우상향을 하는 것처럼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상승과 하락, 빛과 어둠, 긍정과 부정, 생기와 무력감이 있다. 과도하게 한 쪽으로 치우쳐진 상태를 방치하다 보면 우리는 균형과 조화를 잃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고, 그나에 맞게 일과 쉼의 시간을 적절히 보낼 줄 알아야 한다. 혼자의 시간과 함께의 시간, 듣기와 말하기의 균형이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빛을 향한 어둠의 여정, 어둠을 향한 빛의 여정은 한 뿌리이다. 내가 가진 빛과 어둠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마주할 줄 아는 용기를 지닌 사람만이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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