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헤르만 헤세 : 어두움과 밝음의 통합
소중한 책, 아끼는 책이 한 권씩은 있다. 나에게 그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힘이 들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책이자, 그 소설의 데미안은 나에게 있어 든든한 친구였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건 중학교 때였다.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그냥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에 불과했다. 대학교 때 두 번째로 읽었을 때는 '알'이 나왔던 부분만 기억할 뿐 그 외는 인상 깊지 않았다. 그리고 2016년, 서른의 찌질함으로 방황했던 그때, 책을 세 번째로 다시 읽게 되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문장과 이야기, 등장인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소설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 이야기이다. 유복한 가정환경, 화목한 가정 속에서 신앙적인 삶을 살고 있는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어둠을 느낀다. 밝은 세계에만 속해 있다가 처음으로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인 싱클레어는 큰 두려움과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때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데미안은 기존에 싱클레어가 알던 상식과 반대되는 이야기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싱클레어가 스스로 삶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여러 도움들을 준다. 싱클레어는 밝음과 어두움을 통합해나가면서, 자신만의 상징과 철학을 내면에서, 외부에서 끊임없이 찾아나간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외부 세계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등 여러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기에 자신만의 내면세계에만 머무를 수는 없었다. 밝음과 어두움의 통합, 그리고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과의 갈등, 그것들의 조화에 대한 이야기이자, 한 개인의 성장 소설인 <데미안>은 지금까지도 내게 여전히 남아 있는 소중한 책이다.
싱클레어는 나였다. 그렇기에 싱클레어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는 감명적이었고,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밝은 세계에만 있었고, 결코 나의 어두운 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던 나는 어린 시절 크로머에게 휘둘리던 나약한 싱클레어와 똑같았다. 긍정적이고, 활발하고, 유쾌함이 내가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한 가장 좋은 가면이었던 거다.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숨기기 급급해왔다. 애써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들면, '이러면 안 돼'라면서 스스로를 나무랐다. 부모님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모든 일들을 다 잘해야 하며, 친구와 동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긍정적이고 유쾌하고, 착해야 된다 믿었다. 나를 위한 말과 행동은 우선시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어두운 세계를 애써 부정하고, 밝은 세계만 비추기를, 펼쳐지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강연과 강의를 통해서 누군가 내게 정답을 알려주기를 바랐다. '이렇게 하면 성공하고, 행복할 거야' 이런 인생의 정답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답은 외부에 있지 않았다. 바깥에서 나는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이미 나의 정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소설이라는 장르로 슬쩍 이야기 해준 책이 데미안이기에 이 책을 무척이나 아낀다. 특히 간직하고 싶은 문장이 너무나도 많다. 그중의 가장 아끼는 문장은 바로 마지막에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해준 말이다(스포가 될 수 있기에, 읽지 않은 분들은 밑의 글을 보지 않는 것을 권장합니다).
프란츠 크로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
그는 물었다. 나는 그에게 눈을 깜박여 보였다. 미소도 지을 수 있었다.
어린 싱클레어, 들어 봐! 나는 떠나지 않으면 안 돼. 자네는 아마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겠지. 크로머나 그 밖의 일 때문에 말이야. 그땐 네가 나를 부른다고 해서 나는 그렇게 쉽게 말이나 기차를 타고 갈 수 없을 거야. 그럴 때에는 자넨 자기 자신의 내부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너의 내부에 있음을 알게 될 거야. 알겠어? 그리고 조금만 더! 에바 부인이 부탁했어. 만약 네가 언젠가 나쁜 처치에 있을 때는 그녀가 나에게 보낸 입맞춤을 자네에게 해 주도록 말이네... 눈을 감게, 싱클레어!
나는 이 장면에서 펑펑 울었다. 나의 어두움을 인정하고나서부터 울보가 된 것 같다. 버스 안에서 이 마지막 장면을 읽고 있었는데,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새도 없이 혼자 눈물을 흘렸다. 책을 읽고 운 건 인생에서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를 벅차오름과 충만함을 느꼈다. 보물을 찾아서, 집을 떠나 멀리 여행에 나섰지만, 결국 자신의 집 마당 앞에 그보다 더 값진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과연 그 여행이 헛된 여행이었을까? 그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와 떠난 후의 나는 아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랬기에 집 앞마당의 보물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이런 소중한 생각들을 하게 해 준, 선물해준 책이다. 싱클레어의 이야기이자, 데미안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기에 이 책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