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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늦잠을 자게 됐습니다

프롤로그

by 이보소

아침 7시만 되면(컨디션이 좋으면 6시) 칼 같이 눈을 떠 엄마 아빠를 깨우는 아기. 조금 더 눈을 붙이고 싶어 누워 있으려 하면, "일어나 일어나-"를 외치며 뽀뽀 세례를 퍼붓는 아기.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행동은 강제적으로 피곤을 깨부수게 만든다. 자신의 몸 상태를 자의로 제어할 수 없는 자, 그 이름은 부모. 늦잠 제어가 불가능한 패턴이 근 3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 그랬다... 그런 줄 만 알았다.

영영 늦잠을 못 잔다고 생각했던, 늦잠 자는 시절조차 어렴풋해져 가는, 정확히는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오는 서늘 서늘한 날씨 속, 기저귀를 뗀 체 팬티로만 생활하고 있는 아기가 34개월이 된 무렵부터 늦잠을 자기 시작했다. '오 이렇게 진정한 인격체가 되어 가는구나. 너도! 그리고 나도!' 그래봤자 9시지만 그토록 그리웠던 늦잠을 잘 수 있었다. 7시에서 9시로 늦춰진 기상 시간. 2시간 여의 고요함은 그간 누리지 못한 상당한 여유였다.


세상에는 이치란 것이 있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게 있는 법.

여유라는 보너스를 받았지만 등원 준비라는 숙제를 안겨 주었다. 허둥지둥과 허겁지겁의 콜라보레이션. 이제는 강제 기상을 외쳐야 눈을 뜨는 아기. 아기를 깨우고 간단한 식사를 먹이고 옷을 입히고 양치를 하고. 15킬로에 육박하는 아기를 헐레벌떡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서의 결과는 지각이다. 오늘도 역시다.

신입시절 근태왕으로 상을 받았던 나로서는 어쩌면 명예가 실추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의 껍데기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으로만 현재를 유지해 나간다는 건 도태의 한 종류이다라는 것을 인지하고부터 지각은 현재의 부속물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건 아구힘이 대단해야 하기에. 아구힘의 약해진 나는 능력의 최우선을 가족에게 쏟아붓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근태왕으로 돌아가겠거니로 합리화하며 그렇게 일을 한다. 아기와 사랑하는 와이프를 위해.


어쨌거나 저쨌거나 개월에 따라 성장하는 아기, 그리고 그 과정 속의 나의 삶이 재미있다. 돌이켜봤을 때도 행복이었음으로 기억되게끔 아기와의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30개월부터 시작한 배변 훈련은 이제 제법 익숙해져 쉬야를 스스로 하게 됐다. (팬티를 입고 자는 밤에 가끔 실수는 하지만) 어휘는 더욱 늘어 입씨름의 경지에 다다르기도 했다. (이 안 닦을 거예요~ 밥 안 먹을 거예요~ 같은 반대 화법과 이따가 이따가~ 방구 뿡~ 과 같은 무시 화법을 구사하심). 엄마에게는 사랑스럽게 엄망~♡ 아빠에게는 압뽜!! 하며 호통을 치는 인간 차별화까지(사춘기 때는 난 투명인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늦잠을 자게 된 무렵의 이야기들이다.


KakaoTalk_20250202_105631327.jpg 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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