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똥의 힘을 믿는 자
라는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해당 사항이 없다. 다만 주변인들로부터 세 번의 사례를 목격했다. 불혹의 나이에 세 번. 그중 최측근으로부터 일 년 내 두 번의 새똥 사례가 있었으니 아주 희박한 확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 높은 확률은 아닌, 확률적으로 전무할 수는 없는 새똥 이야기를 스리슬쩍 해 보겠다. 그런데 갑자기 왜 새똥 이야기냐고? 새똥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례는 육 개월 회사 선배의 이야기다.
약 십 년 전 사원 시절 때였다. 흡연가인 그와 점심을 먹고는 회사 일층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일명 식후땡의 시간에 합류를 한 것인데 대화의 주제는 생각나진 않지만, 대화를 하다가 머리카락을 만지는 선배의 모습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그는 의아스럽다는 듯이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비비적거렸고 뭐가 묻어 나온 손가락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입에 물던 담배를 끔과 동시에 불길한 손가락을 자신의 코로 가져갔다.
"에이 새똥이잖아"
그는 심각했으나 나는 심각하게 웃겼다. 빵 하고 터진 웃음이 쉽게 멈추지 않은 건 항상 당당하던 선배의 모습이 당황함으로 도배되었기 때문이었을지도.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웃음소리의 데시벨은 점점 커져만 갔고 소리의 세기가 그에게 모멸감을 주었는지 그는 분노와 함께 위협의 메시지를 보냈었다.
"웃지 마!!"
당당함과 함께 다정함도 겸비되어 있는 선배에게 분노란 감정은 처음 본모습이었다. 사람은 극한에 달해야 본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새똥의 힘을 처음 알게 된 때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례는 일 년 미만이자 최측근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사랑스러운 아기와 와이프님.
먼저 아기의 이야기다. 아기와 함께 집 앞 백화점에 가보겠다고 신호를 기다리던 건널목에서 아기는 새똥을 맞았다. 대방어 같은 몸부림을 치는 지금(36개월 현재)과는 다르게 폭하고 아빠 품에 잘 안겨있었던 시절. 언제 녹색불이 들어오는지 신호등만을 노려보다가 아기에게 시선을 돌렸더니 조그만 머리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새똥이었다. 녹색불이 바뀌자마자 백화점 화장실로 직행하여 아기의 머리카락에서 새똥의 흔적을 지웠다. 생각해 보니 이때 역시도 깔깔거렸었다. 아마도 나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으로 다가오는 이기성이 탑재된 자인지도. 와이프에게 짤막한 에피소드를 알려주었고 우리는 로또를 사는 것으로 에피소드를 연장시켰다. 결과는 오만 원의 행운을. 아기는 여러모로 복덩이였음을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마지막은 인생을 함께하고 있는 나의 와이프님의 이야기. 어린이집 하원 후 아기와 같은 반 친구들이 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아래층에 살고 있는 아기가 와이프를 나무 밑으로 질질 끌며 유인했고 잠깐 서 있으라는 만 두 살 아기의 명령에 얼음이 되어 있다가 와이프의 머리 위로 새똥이 떨어졌다. 천진난만한 아기가 무얼 알았겠냐마는 와이프의 새똥 소식에 오만 원의 달콤함이 먼저 떠올랐다. 와이프에 대한 걱정보다 로또가 우선이었던걸 보면 나란 놈은 여전히 이기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였다. 누가 사람 쉽게 변한다 했는가. 자신의 새똥 소식에 불쾌함보다는 유쾌함으로 응대한 긍정적인 와이프. 자신의 희생이 집안에 행운을 가져올 거라 생각하며 흔쾌히 로또를 구매했고 오 천 원의 결과로 이어졌다. 새똥에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증명된 때였다.
나쁘지 않은 값이다. 아직 새똥을 맞아본 적은 없지만 살아생전 한 번은 맞아보고 싶다. 우리 가족 중 나만 안 맞기도 했거니와 왠지 어마어마한 행운이 다가오지 않을까 싶은 미지의 희망 때문이다. 새똥의 힘을 맹신하기에 행복한 똥이 머리에 내려앉기를 바란다. 새똥이 내려앉으면 그 상태 그대로 로또 가게를 방문하리. 그리고 새똥의 기운이 고스란히 로또 가게에 퍼져 보통의 사람들이 소소한 행운을 얻기를 바라리. 세상살이 힘들다지만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것이 인생이란 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