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변 훈련은 마라톤입니다
배변 훈련을 시작한 건 30개월 때부터였다. 빠른 친구들은 벌써 배변 훈련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아기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배변 훈련을 하게 된, (빠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다고 생각한)만 두 살에서 세 살로 넘어가는 적당한 시기였다. 마침 어린이집에서도 때맞춰 배변 훈련을 시작한다 했고 가정에서도 함께하며 본격 배변 훈련에 임하게 되었다. 기저귀의 잔여분 확인과 배변 팬티 구매, 배변 훈련 스티커 및 아기 변기 구매 등 배변 훈련에 동참하는 아빠의 자세는 비장했다.
32개월 차. 배변 훈련을 한 지 불과 2개월 만에 밤기저귀를 떼면서 '역시 우리 아기는 뭐든 잘해! '를 외쳤던 고슴도치 아빠는 이내 연일 밤잠 소변 실수로 찝찝한 상태로 기상하는 자신의 아기를 보면서, 연일 젖은 내의와 팬티를 손으로 빨며 동시에 세탁기와 건조기를 오가며 이불 빨래를 하게 되는 자신을 보게 되면서, 고슴도치의 비장했던 가시가 실은 말랑함으로 가득 찬 허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실제 고슴도치의 가시는 내부가 텅 비었고 공기가 채워져 의외로 단단하지 않고 굉장히 유연하다고 한다)
어느덧 아기 인생 36개월 차. 만 3세의 형님으로 진입했지만 무아지경으로 놀다가 쉬야 실수를 하기도 하고 샤워 후 옷을 안 입겠다며 사방팔방을 도망치다 한 구석에서 강아지 마냥 응가를 하기도 한다. 배변 훈련이야 100미터 단거리 정도겠거니라고 치부했던 망상은 고슴도치 아빠의 확실한 오판이었다. 오판의 후폭풍이라고나 할까. 아기의 "왜요" 폭격이 시작된 것도 이때쯤이었다. 말로만 듣던 왜요 병을 앓게 된 아기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왜요를 붙이기 시작했다. 가령 이렇게.
"이건 할아버지가 주신 곶감이야."
"왜?"
"규필이 주려고 주셨지." (말을 안 들을 때는 태어났을 때 할머니가 명리학을 공부했다는 분에게 받은 이름을 부르곤 한다)
"왜?"
"규필이 맛있게 먹으라고 할아버지가 감을 말리셨어."
"왜?"
"감을 말려야 이렇게 쫀득쫀득한 곶감이 되는 거라 말리신 거지"
"왜?"
"일단 먹어봐." (입을 다물기 위해 우겨놓은 곶감, 조그만 입에서 오물거린다)
"아 맛있다!!"
왜요 병을 멈추려면 화제 전환이 절대적이다. 잘못된 화제 전환은 화를 돋우니 아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 화제를 선택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 왜요 병이 전혀 지겹지가 않고 오히려 귀엽기만 한 것은 왜일까. 조그만 입으로 연신 왜를 외치며 세상에 대한 관심도를 증폭하는 아기. 신기한 세상을 알려주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한 가지 고민인 건 정확한 답을 못할 때의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였는데 가령 이럴 때이다.
(잊을만하니, 바지에 또다시 응가를 하였을 때)
"응가가 마려우면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하라 했지. 왜 바지에 응가를 했어?"
"응가를 한 건 응가가 마렵기 때문이지. 그건 왜 물어보는 건데."
"..." (맞는 말이다)
엄마 아빠가 세상의 전부라 생각할 텐데 모른다고 답하는 게 맞는 건가 싶지만 가끔은 정말 왜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너무나도 맞는 말을 하면 답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럴 때는 네 말이 맞다고 하는 인정을 베풀길. 혹여 답이 바로 안 나오는 모르는 질문을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모른다고 인정을 하길.
왜라는 질문에 꼭 모든 답을 할 필요는 없다. 엄마 아빠도 아기와 같은 인간이기에. 인간은 기계가 아니지 않은가.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것이 바로 인간미이고 답에 대한 부담감을 벗어날 수 있는 이유였다. 기저귀를 떼가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배변 훈련을 계속하는 아기. 아기의 배변 실수를 정리하는 엄마와 아빠. 인간이기에 가족이기에 일어나는 사랑스러운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