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깁니다
남자 아기의 특징인 것인가. 언젠가부터 태권도를 배워와서(아마도 어린이집이겠지만) 앙증맞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태!껀!도! 하는 힘자랑에 욱!웍!악! 하며 쓰러지는 척하는 것도 아빠의 자세. 그런데 이 앙증맞은 태권도라는 것이 개월수가 차면 앙증맞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지. 쓰러지는 척이 아닌 진짜로 쓰러지게 된 날, 그날은 30개월 아기와 샤워를 한 날이었다.
지금은 샤워를 하자하면 신이 나서 욕조로 들어가지만(6개월 만의 성과이지만 이제는 물에서 한참을 놀기에 인내가 동반되게 되었다) 30개월 인생살이를 펼쳤던 당시에는 샤워만 하자 하면 질색과 함께 거부 반응을 보였다.
"우리 이제 샤워하자"
"아니어요"
"오늘 땀을 많이 흘려서 샤워해야 돼~"
"아니어요"
반복되는 거절 의사에 결국 힘으로 아기를 들어 올려 샤워를 하기로 했다. 자아가 강해진 30개월의 아기는 화장실로 직행할 때까지 공중에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였다. 대방어 같은 강력한 활기참에 잠시 놀라긴 했지만 능숙한 어부의 마음으로 무사히 화장실 욕조에 도착했다. 욕조에 가까워질수록 대방어는 더욱 파닥거렸고 그는 허리의 수축과 팽창을 넘어 두 다리를 파닥파닥 하며 더욱 격렬히 반응했다.
"아니어요! 아니어요!"
두 발은 얼굴을 가격하기 시작했고 몇 번의 퍽퍽 거림이 볼에 전달됐지만 노력한 척하는 어부는 대수롭지 않은 척 아기를 내려놓으려 했다. 그때였다. 욕조에 발을 닿게 하려고 아기 몸을 돌렸는데 대방어는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했는지 마지막 발길질을 선사했다. 퍽!! 금메달빛 뒤돌려차기였다.
욕조에 발이 닿으니 활어 같은 몸부림이 진정된 아기. 샤워물을 틀려고 하니 아기가 말했다.
아기는 나를 가리키며 이거 뭐야를 연발했고, 나는 아빠다!! 아빠다!! 하며 절제된 분노의 샤우팅과 함께 다시 샤워기의 물을 틀려했다. 그렇게 샤워기의 손잡이를 올리려 한 순간 거울 속의 오른쪽 코에 코피가 주르륵하고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밤낮 없는 회사의 과로가 몸에 이상 현상을 불러일으켰다고 직감했지만 어쨌거나 트리거는 뒤돌려차기에 코피를 뽑아낸 아기의 금빛 발차기였다. 아기는 30개월 인생사 코피를 처음 본 것이었고 진심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한쪽의 코에 휴지를 꼽고 아기의 샤워를 이어갔던 날 아기에게 코피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토실토실하고 뽀송뽀송한 아기의 몸을 닦아주며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기와의 삶은 참 재밌다. 그리고 다이내믹한 아기와의 생활이 꽤 좋다. 육체적 힘듦이 동반되지만 힘듦을 해소시켜 주는 강력한 엔돌핀이 있으므로. 또한 심심함보다는 다이내믹함이 나으니깐. 그래야 유한한 인생사 ㅈ즐겁게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