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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먹먹할 때

건강이 안 좋을 때는 꼭 병원을 찾으세요

by 이보소

남자 아기라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여자 아기들이라고 다 얌전하지는 않을 테니. 그저 기질이라는 것만이 아기의 왈가닥을 설명할 수 있겠다. 그렇다. 세 돌 남아의 활동성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아기의 하루하루는 아주 세차고도 힘 있게 발전한다. 힘 조절이 안 되는 것인지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배 위로 올라 15킬로의 무게로 점프를 하고 조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마구 짓이긴다. 젠장, 아기라지만 아프다. 가끔은 얼굴에 상처가 나기도 하는데 '아악-'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 마지못해 '미안해-'라는 사과를 건넨다. 이 녀석, 아무래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때는 설날 전이었다.

침대 위에서 하얀색 휴지를 이리저리 뜯더니 "이건 얼룩말이야 사자야 기린이야 악어야" 라며 쓰레기 더미로 직행할 휴지들에게 동물의 혼을 주입시켰다. 아기에게 장난을 친다고 힘껏 껴안았다가 동물들을 괴롭혔다고(내 눈에는 흰색 쓰레기인 휴지 뭉치들) 한 소리를 들은 힘없는 아빠. 곧 아기는 흩어진 휴지들을 내 신체의 구멍구멍 속으로 투입하는 형벌을 집행했다. 귓구멍으로 콧구멍으로 입으로. 조그만 손은 명확한 목표 하에 쉬지 않고 투입되었다. 싫은 티를 냈지만 아기의 행동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피해자는 기억나는 그런 집요함. 폭풍우 같은 시간은 아기를 억지로 바닥으로 내려놓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때는 몰랐다. 이 놀이가 위험한 놀이었음을.


어른들에게 세배로 귀여움을 떨고 난 설날 이후. 연휴의 끝이 얼마 안 남은 날이었다. 한쪽 귀, 정확히는 왼쪽 귀가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회사에 나가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인한 이명 현상인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려나 싶었지만 회사 출근 날까지도 불편함이 계속되었다. 이 놈의 회사, 정말 문제다. 건강까지 해치면서까지 일을 해야겠냐 싶어 또 한 번 퇴사 작전을 세우며 출근한 회사. 심지어 업무 중에 '삐-' 하는 이명 소리까지 들리기도 했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일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릴까 싶어 퇴근 후 러닝도 했다. 추운 겨울 땀을 빼면서까지 달렸는지만 여전히 귀는 먹먹했다. 심히 걱정되는 건강. 흔이 넘어가니 건강에 특히 신경이 쓰인다. 결국 토요일 아침 일찍 이비인후과를 향했다. 이상이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스트레스성 문제라면 분명 고쳐야 할 안. 걱정 반 희망 반의 마음으로 찾은 이비인후과는 아기가 감기가 걸리면 찾는 단골 이비인후과였다. 담당 선생님은 매번 진료하시는 선생님의 대기가 길어 옆 호실의 초면 선생님이었고.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왼쪽 귀가 먹먹합니다."

"얼마나 되셨죠?"

"4-5 일 정도 된 것 같아요."

"쭉 그런가요? 띄엄띄엄 현상이 있나요?"

"계속 그럽니다."

"일단 귓속을 좀 봅시다."

왼쪽 귀를 바로 보는 줄 알았으나 의사는 오른쪽 귀부터 관찰을 했다.

"고막에 눈썹이 붙어 있어서 이것부터 제거하겠습니다. (고막에 왜 눈썹이 붙어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고) 자 이제 왼쪽 귀를 볼게요"

"네."

"안에 흰색 솜 같은 것이 있는데요?"

"흰색 솜이요?"

"일단 제거할게요."

의사는 핀셋으로 흰색 솜으로 추정되는 이물질을 빼내었고 내 눈앞에 보여준 그 흰 것은 며칠 전 아기와 사투를 벌이다 들어간 흰색 휴지임을 직감했다.

"어떠세요? 잘 들리시나요?"

"네 잘 들리네요. 아기가 휴지를 넣었나 봐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무언가의 민망함과 함께 다시 찾게 된 세상 소리. 먹먹함이 사라지고 나니 아기와 사투 벌였던 장면이 떠올랐다. 점점 왈가닥이 되어가는 아기. 제어와 주의 전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고서 아기에게 말했다.


"쭈니야. 지난번에 아빠한테 휴지를 넣어서 아빠 병원 다녀왔어. 앞으로 휴지 막 구멍에 넣고 그러면 안 돼."

"아빠 아팠어? 미안해."

"응응 그러니깐 다음부터는 휴지 넣고 그러면 안 돼요."

"응 알겠어. 근데 왜?"

"휴지를 구멍에 넣으면 빼지를 못해서 아빠 병원 가야 하잖아."

"응 알겠어. 근데 왜?"

"아니, 휴지가 들어가면 코로 숨도 잘 못 쉬고 귀도 잘 안 들리고 그러니깐 조심해야지."

"응 알겠어. 근데 왜?"


왜요 병을 앓고 아기는 무한 왜! 를 외쳐댔다. 에효. 다음에는 왜요 병에 걸린 아기와 함께 병원을 찾아야겠다. 병을 고칠 방법은 없는지 확인하려 말이다. 건강이 안 좋을 때는 참지 말고 꼭 병원을 찾자

개구쟁이와 참여한 책교육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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