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성숙한 어른입니다
내 아기지만 짜증 날 때가 있습니다
새벽 3시 40분.
전날 심한 야근으로 몸이 망가졌다. 충전이 필요한 몸 상태. 밤 12시. 몹시 자고 싶지만 단지 희망사항일 뿐. 한밤 중 깨어 있는 시간이 장장 4시간이 다 되어간다. 또다시 아침해를 볼지도 모르겠다.
안다.
짜증이 나면 안 된다는 것을. 이제 갓 백일이 지난 아기다. 그런데 짜증이 난다. 귀에 대고 빽빽하고 우는데. 불편하다고 몸을 버팅기는데. 어르고 달래도 울음은 그치질 않는다.
짜증이 길어지면 분노로 변한다. 분노의 결과는 침대 바닥에 그대로 내려놓기. 울음은 더 커진다. 목소리가 쉴 정도로 울음이 길어지고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팔이 너무 아프다. 분노는 포기로 변했다.
알아서 해.
아기의 심한 울음에 쪽잠을 자던 와이프가 일어났다. 아기를 어르고 달랜다. 여전히 울음은 멈추질 않지만 아까보다는 진정이 되었다. 진정이 되니 젖을 물린다. 이내 조용해지는 아기. 땀범벅이 된 아기는 곧 잠을 잔다.
새벽 4시 10분.
며칠째 계속되는 새벽 밤 울음. 잠투정을 제대로 못 받아주는 건지. 아니면 재우는 게 서툰 건지.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아기가 새근새근 자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침대에서 아기를 재운다. 이제야 누울 수 있다. 바닥에 있는 아기 매트에 몸을 눕혀 본다. 짜증과 분노로 뒤범벅이 된 마음을 가라앉힌다.
아기잖아.
그런데 왜 짜증이 나고 분노를 하게 되는지. 부끄럽다. 하지만 아기가 귀에 대고 소리 지르듯이 계속 운다면. 감정 제어가 쉽지 않다. 낮에는 울어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아마도 밤에 잠을 못 자니 예민해지는 것 같다. 400개월 이상 차이가 나는데 짜증을 냈다. 참 미성숙한 어른이다.
고요한 새벽 공기 속 아기 매트에 홀로 누워 길게 심호흡을 한다. 조금 진정이 된다. 반복되는 패턴에 몸이 지쳐간다. 육체의 피로가 정신을 지배하게 됐다. 이런 게 육아라면 아기 갖는다는 걸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었나. 하긴 자책할 새도 없이 아기가 덜컥 생겼으니.
쿵쾅거렸던 심장도 제 속도를 찾은 것 같다. 와이프도 잠이 들었나 보다. 출근하려면 몇 시간 안 남았다. 하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아 맞다! 둘째!
막연하게 와이프와 얘기를 했던 둘째. 둘째는 없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지해져야겠다.
아기띠가 효과가 있을 때가 있었다.
백일 전까지만 해도 밤 12시에 아기띠를 하고 와이프와 동네 산책을 했다. 한 바퀴 돌고 나면 아기는 새근새근 잠을 잤다. 들어와서 눕히면 그대로 잠을 잤는데 하루하루 힘이 생기더니 어느새 아기띠를 하면 답답해한다. 그렇게 아기띠는 멀어졌다.
그래서 선택한 포대기.
품이 답답해서 칭얼거리는가 싶어 포대기를 주문했다. 해외에서 인기라는 대한민국 전통 아기띠. 이것이 K-컬처요 이것이 국위선양일지도.
요새 포대기는 안장이 있다. 아기 다리를 안장에 걸치고 들쳐 멘 후 가슴팍에 엑스자의 끈을 끌어와 결속하면 완성되는 2022년 산 K-포대기. 중국산인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어쨌거나 아기는 K-컬처의 포대기를 좋아했다. 물론 초반에만. 이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칭얼거림으로 변했고 고로 아이템 효과는 모두 실패였다.
대체 아빠와 엄마 차이가 뭔데.
밤 12시가 되면 울음을 보이는 아기. 백일이 지나고부터 아이템 효과는 먹히질 않고 아빠 품에 있으려 하지를 않는다. 엄마 품에 안기면 금방 평온해지는데. 아빠가 힘이 있으니 더 안정감이 있지 않은 건가. 모르겠다.
엄마를 따라 해 보기로 한다. 엄마 키 정도로 높이를 맞추어 안아도 보고 엄마가 흔드는 바운스 리듬을 따라도 해보고 엄마 목소리까지 흉내 내 봤는데도 아기는 울음을 멈추질 않는다. 심지어 수건으로 엄마의 가슴을 따라 하기까지 했는데. 아기는 냉정했다. 아빠 품에서는 잠투정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난 짜증을 부렸다. 말도 못 하는 아기에게.
피곤한 눈을 비비며 출근을 한다.
출근길 지하철 속 사람들은 언제나 바글바글이다. 이들도 다 갓난아기 시절을 거쳤을 텐데. 다들 부모의 손길을 받고 자랐을 텐데. 내 아기인데 짜증 날 때가 있을지 몰랐다.
가끔씩 뉴스에 나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학대 이야기. 그러면 안 되는 일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으로 이해되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아니 머리로 이해되나 마음으로 이해가 안 되는 건가. 이해의 영역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해가 포함되어야 하는 그런 생각. 학대하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이해라는 관용을 베풀 줄이야.
지하철은 한강을 지나간다.
한강 위에 아침해가 넓게 펼쳐 있다. 한강 위에 뿌려진 아침 햇살. 무조건적인 베풂이다. 아기에게 자비롭지 못한 내가 부끄럽다.
아직 아기잖아. 자는 법을 모르는 거잖아. 그럼 잠자는 방법을 알려줘야 하잖아. 너는 아빠고 너는 부모니깐. 새벽의 짜증이 후회가 된다.
생각지도 못한 짜증이 나는 것. 그리고 짜증 낸 내가 부끄러워지는 것. 그 짜증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 나라는 것. 모두 옹알이 아기를 키울 때 겪는 일이다.
바글 했던 지하철이 조금은 한산해졌다. 지하철이 곧 내릴 곳을 알린다. 짜증 내지 않는 성숙한 어른이 되기로. 지하철 문이 열리기 전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어른이'가 이제야 '어른'이 돼가나 보다. 지하철은 다음 정거장을 향해 떠났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동안 핸드폰 속 아기 사진을 본다.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 밤 사랑스러운 아기를 품에 꼭 안고 많이 달래줘야겠다.
잠자는 법을 몰라서 우는구나. 괜찮아 아빠가 안아줄게. 너무 무서워하지 마. 옆에서 지켜줄게. 그리고 아빠가 성숙해질게. 고마워. 사랑해. 태어나줘서.
아빠와의 시간을 더 함께 하고 싶어서일까. 쉽사리 잠이 들지 않는 나의 아가여. 짜증을 내어 미안합니다